이제 내가 나로 살아가지 않으면, 살고 싶지가 않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타인의 백만가지 취향을 덕지덕지 오려 붙인 나.
남에게 쏘는 화살은 항상 빗나가면서도, 내 가슴팍으로 쏘는 화살은 언제나 명중인 나.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눈이 부시는 여름의 아침 아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구나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고, 움직일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움켜쥐려 노력했던 날들.
하지만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나 뿐이야.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그저 생 속에서 당연한 것임을 깨닫고 괴로워하지 않고 담담히 살아가고 싶다.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햇살이 반짝이는 아침. 따뜻한 커피. 귀여운 인형. 귀여운 아이들. 나와 타인을 위로해주는 낱말들. 쓸모 없다 생각한 내 몸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들. 언젠가 내가 느끼기에 의미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일들. 락밴드의 음악. 피아노 치기. 글을 쓰기. 내 안에 켜켜히 묵은 단어들을 뱉어내기. 작은 호의에 기뻐하기. 훌쩍 떠나고 싶은 곳으로 떠나기. 웃긴 예능들. 엄마가 차려준 밥상. 함께 있어도 마음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편안한 대화. 여행을 한 편의 비디오로 만들기. 공원. 황수영의 산문. 정혜신의 글. 필름 사진. 노을 빛이 세상을 뒤덮는 시간. 버스 창가에서 목도하는 계절의 아름다움. 최유리의 노래. 동네 시장. 세월이 쌓여 정겨운 것들. 정겨운 미소, 정겨운 풍경. 아파트의 놀이터. 나를 찾는 전화. 빈티지한 커튼. 빈티지한 원피스. 내가 만든 팔찌.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 안부를 묻는 말. 강가를 산책하는 일. 여름 밤. 학교.
사랑하는 것들을 움켜쥐고 살아야지. 한 때는 사랑하는 것들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잃었을 때의 괴로움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내가 죽었을 때 가지고 갈 것은 그저 사랑했던 기억들.
마음이 괴로워질 때면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려야지. 그리고 미움보다 더 크게 사랑해야지.
미운 마음이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크게 다른 것들을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