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했던 여름을 보내며
처서가 지났다.
어제부터 세차게 비가 오더니, 더위가 한풀 꺾인 듯하다.
매일 퇴근 후 집에 오면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많이 났었는데, 오늘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며 평소와 달리 땀이 별로 나지 않은 내 모습에 놀랐다.
강렬했던 올해의 여름과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이 기억이 그리워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돌아오겠지.
몇 십 번의 사계절을 겪으며, 여름을 가장 좋아하게 된 나는
인생에서 몇 번의 여름을 더 가질 수 있을까.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빛이 내 몸마저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던 황홀한 추억들.
유독 더 바다를 사랑하게 되던 날들.
오래오래 여름을 즐기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편지지 두 장을 샀다.
한 장은 멀리 떠나는 이를 위해. 또 한 장은 새롭게 합류하게 된 이를 위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항상 즐겁다.
마음마저 간편하고 재빠르게 주고받아야 하는 시대에, 느리지만 온 마음을 꾹 담아 줄 수 있는 수단이니까.
편지를 쓸 때면 받는 이와의 추억과 웃음이 떠오른다.
보이진 않지만, 편지봉투 어딘가엔 그 추억 조각도 분명히 꽂혀있으리라.
심리학 공부를 새로 시작하게 됐다.
올해 나의 목표는 조금 과도하게 계획을 세운(사실 이미 저질러버린) 이 공부를 무사히 끝마치는 것이다.
퇴근 후 최소 두세 시간은 꼬박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해야만 습득할 수 있는 양이다.
어릴 적부터 타인에게 호기심이 많던 나의 기질이 심리학과도 잘 맞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심리 상담도 시작했다. 음, 별 탈 없이 잘 보내던 일상에서 최근 살짝의 균열이 있었다.
문제는 그 균열이 점점 벌어져 최근 3주 간은 물에 가라앉은 것만 같이 숨쉬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숨을 내뱉으려 해도 누가 다시 내 어깨를 물속으로 꾹 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
혼자서도 잘 견뎌왔고, 어쩌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것들이 아직까지 발걸음을 붙잡나 보다.
비싼 값이지만 나를 위해서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될 때를 위해 예방 차원에서.
그래도 나는 넘어져도 무언가를 줍고 일어나는 사람.
이번에 주운 것은 나를 마주 볼 용기이다.
조금씩 단단해질 내가 기대된다.
자, 이제는 공부를 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