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것들
"갯것 잘 받았슈~"
"양이 많으니 소분해서 냉동보관해."
"맛나게 먹어~"
톡에 정감 어린 말들이 오간다.
갯것은 바지락을 말한다.
내 어릴 적 시장에 가면 항상 바지락을 두고 "갯것 사슈" 했지, 소라나 꼬막을 두고 갯것 사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껏 내 고향에서만 바지락에 사용하는 사투리로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전에 등재된 갯것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에서 나는 물건으로 소라, 꼬막, 바지락 같은 것들을 총칭하는 단어라 하니 지금껏 잘못 알고 산 셈이다.
그래도 우리끼린 "갯것=바지락" 그렇게 통한다.
바지락은 3월~5월이 제철이다.
이 갯것, 해감한 바지락을 고향의 누님으로부터 택배로 받았다.
갓 잡아온 바지락은 살이 통통하고 국물이 뽀얗게 잘 우러나 맛이 끝내준다.
오남매는 증적이라도 뜨듯이 갯것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하나같이 사진 찍어 톡창에 맛있게 올라온다.
난 통째로 우려내 갯것이 주인공인 조개탕을 끓여 먹었지만, 올라온 음식 사진엔 부재료로 올라간 갯것이지만 국수면보다 수제비면보다 스파게티 면보다, 미역보다 주인공이고 눈에 띈다.
맛있다고 자랑하고픔에 올리는 게 아닌, 잘 보내줘서 고향 생각하며 오남매 생각하며 부모님 생각하며 잘 먹어서다.
그렇게 먹다 보니 고향의 맛이라 그런지 금세 먹어치워 버리고….
누님이 보낸 갯것에서 고향이 떠오르고 오남매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부모님 살아생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던 속담처럼 참 다사다난했던 일들이 많았다.
오남매 어린 시절 옹기종기 모여 살던 좁지만 넓었던 우리의 삼일주택.
많은 식구로 학창 시절 방에 줄을 그으며 내 구역 표시를 하며 내방 갖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던,
반찬투정하는 철없던 막내 때문에 새벽마다 맛있는 반찬으로 오남매의 도시락 싸기 바빴던, 소풍시즌에는 매일같이 김밥을 싸던 어머니옆에서 집어먹던 꼬투리김밥은 얼마나 맛났던지,
오늘 같이 화창한 주말이면 음악을 크게 틀고 창을 활짝 열어 대청소하며 그 많은 화분들에 물을 뿌리고 수족관에 있을법한 큰 어항을 물갈이하던 그 맑은 날의 빛나고 푸르던 날에 기억들….
무더운 여름날 밤이면 사방 시원한 바람 잘 부는 옥상에 한 상 차려놓고 삼겹살과 아나고(붕장어)를 구워 먹으며 별과 달을 보며 이야기 나누던 꿈같은 지난날, 그 많은 음식을 옥상으로 옮기려면 단 높은 계단을 수십 번 오르내리느라 힘겹고 귀찮았을 텐데, 그때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은 웃음과 미소로 가득하다. 심지어 옥상에 TV까지 연결해 주셨으니, 재미나게 해주려 했던 부모님 덕에 참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유년 시절의 기억은 이렇게 부모님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6~7월이 제철인 완두콩에서도 나는 오남매를 떠올린다.
더위가 슬슬 기미를 보이는 여유로운 주말 오후, 시골에서 장모님이 키워 보내온 간식거리라며 와이프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완두콩을 내왔다.
배달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에 익숙한 터라, 어찌나 낯설고 반갑던지 낼름 뜨거운 콩 꼬투리 하나 집어 들어 배를 가른다.
동그레한 다섯 알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가지런히 누워 있다.
쓰 ~읍, 아주 작은 콩들이 입안으로 쏙쏙 들어와 콩 특유의 담백함을 느낄 즈음 입안에서 금세 사라진다.
누군가는 감질나서 왕창 집어 입안에 털어 넣고 싶겠지만, 옥수수처럼 완두콩도 꼬투리에서 하나하나 입으로 떼어먹는 것도 재미지고 차분하게 만들어 생각의 틈을 안겨준다.
다시 두 번째 완두콩 꼬투리를 집어 배를 가른다.
"어라, 이번에도 다섯 알이네" 옹기종기 모여있는 재미난 모양을 보니 무심코 오남매가 떠오른다.
한 부모에게서 나와 아옹다옹 모여 살던, 화목했던 그때가 이 다섯 알의 완두콩에도 묻어 있다.
부모님을 여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멀리 떨어져 살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안부를 묻고 잔정을 나누며 마음속 의지하며 살고 있는 오남매다.
무심코 던진 말에 "여기 핏줄이 함께 해"하고 "." 점 하나라도 남긴다.
편하게 넋두리할 수 있는 곳, 핏줄이다.
"오늘 이빨 임플란트 했는데 말야~."
"어버이날 선물 받았어~."
"난 몸이 안 움직여."
"하하하"
우리의 대화도 점점 세월을 먹어가지만, 여전히 정감 넘치고 서로 위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각기 멀리서 많은 사연과 경험을 만들어 가며 우리의 부모님처럼 자식에게 좋은 추억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을 오남매다.
나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유년시절은 이렇게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상에서 쉽게 보는 만물에서 쉬이 그 시절의 추억으로 들어간다.
행복했고 아름다웠었기에….
그래서 우리 삶은 END가 아닌, AND다.
P.S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 이젠 고향은 아득한 그리움이다.
철쭉, 떡국, 흰머리, 김치,… 삼라만상에서 끝없이 고향으로 부모님으로 연결된다.
여전히 삼일주택 거실엔 칠전팔기(七顚八起)가 걸려 있고 화초들이 자라며 금붕어가 뻐끔데고 있다.
그 옆 소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기대어 앉아 웃고 계신다.
우리 맘 속에서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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