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카카오
알고 싶은 내용을 입력했을 때 다양한 결과를 내놓는 검색창은 인터넷 시대의 상징이었다. 이를통해 대중들은 백과 사전이나 지식인층이 점유하던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었다. 미국의 검색 엔진이 지구촌 곳곳으로 파고들 때, 한국은 몇 안되는 예외지역으로 남았다. 언어의 특수성과 국산 검색 엔진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해자(Moat)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가 본격화 되고 컴퓨팅 파워가 증폭되면서 과거 검색 엔진에 쏠려있던 힘은 인공지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카카오를 비롯한 한국의 IT기업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AI(Artificial Intelligence)나 딥러닝 등 전문가들의 용어는 어느덧 부연 설명 없이 쓰일 만큼 일상어가 됐다. 그 배경 중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는 2016년 ‘알파고’의 바둑판 승부다. 컴퓨팅 파워의 진화를 현실에서 보여준 이 사건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장벽을 본격적으로 걷어내는 신호탄으로 읽혔다.
카카오는 인공지능 관련 잠재 역량을 한데 끌어 모으기 위해 2017년 1월 A TF를 조직했다. 인공지능이 카카오에게 새롭거나 생소한 주제는 아니었다. 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s) 기술을 활용한 Daum 꽃 검색, 음성 인식 기술이 적용된 카카오맵 앱의 음성 검색 등 AI기반 서비스들을 이미 여럿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2월, 검색 기술 인력이 주축이 된 AI부문이 출범했다.
AI부문이 처음 착수한 일은 인공지능 스피커 개발이었다. 2017년 3월의 일이다. 음성 인식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제로 뎁스(Zero Depth)’에 수렴하는 압도적인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 북미에서는 아마존의 알렉사 등 다양한 사례가 등장했지만, 한국어로 운영되는 인터페이스는 태동기라는 이유도 있었다. 카카오톡과 멜론, 카카오택시, 검색 등 서비스 도메인을 갖춘 카카오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카카오 i 인공지능 플랫폼과 스피커를 6개월 안에 만들어낸다는 목표가 섰다. 서비스 개발에 이골이 난 카카오 크루들이지만,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하드웨어 디바이스를 만들고 그와 연동되는 앱까지 함께 만드는데 반년의 시간은 무척 짧았다. “카카오미니 발매를 준비하는 동안 여러 기업들이 인공지능 스피커를 먼저 내놓았어요. 연동되는 서비스들이나 원천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선점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걱정도 됐습니다. 기우였죠. 2017년 하반기 공개한 티저 사이트에 굉장한 관심이 쏟아졌어요. 11월 첫 판매분으로 준비한 1만 5천 대는 9분 만에 완판 됐죠. 이듬해 두 번의 추가 판매를 통해 카카오미니 1세대는 누적 20만 대가 출고됐습니다. 여러 부가 혜택을 등에 업은 제품들과 맨몸으로 경쟁해 일궈낸 성과였어요.” 조디악이 말했다.
이후 카카오미니C와 미니링크, 미니헥사 등 디바이스들이 카카오i 생태계에 추가됐다.
카카오미니에 쏟아진 폭발적인 호응은 카카오와 잠재 파트너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만약 카카오의 음성 인식 기술과 손잡는다면?’이라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2017년 한해 동안 협업을 통해 음성 길안내 개선 프로젝트를 함께한 현대자동차그룹과 ‘더 편리한 드라이빙 생활’을 목표로 새로운 이용자 경험 설계가 시작됐다.
카카오i가 본격 적용된 차량내 대화형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는 약 14개월간의 협업을 통해 2019년 3월에 나온 신형 쏘나타에 탑재됐다. 음성 명령어 만으로 뉴스 브리핑과 날씨 안내, 영화 및 TV 정보, 주가 정보, 외국어 번역, 자연어 길안내 등 10여 가지 기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습기 제거해줘”, “바람 방향 아래로 해줘”와 같은 자연어로 차 안 환경도 바꿀 수 있었다. 음성인식을 통한 차량 제어 기술이 쏘나타를 필두로 현대자동차그룹의 다양한 차량에 적용됐다.
집 안을 제어하는 카카오i는 포스코건설의 더샵과 GS건설 자이(Xi)를 통해 구현됐다. 음성형 엔진과 대화형 엔진이 결합된 카카오i를 통해 카카오미니와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집 안 환경을 조절하는 편리함을 누리게 된 것. 이는 IOT 기기를 제어하는 수준을 넘어 입주민 생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도화된 연계 서비스를 구현하는 발판이 됐다.
2018년도까지 2년간은 카카오의 AI가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면, 2019년도는 플랫폼의 진화와 다른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나날이 이어졌다. 카카오i는 MRC(Machine Reading Comprehension)와 딥러닝 방식의 TTS(Text to Sound) 기술 등을 적용해 고도화됐다. 그간 검증된 B2B 협업 역량을 토대로 외부 파트너십 또한 한층 다각화 됐다. 대화형 플랫폼과 딥러닝 플랫폼, 풍부한 경험을 내재화 한 버티컬 서비스들이 조화된 결과였다.
AI부문은 CIC(Company-In-Company. 사내독립기업)로 새롭게 진용을 갖추고 산업 현장의 수요, 기업의 소비자 맞춤형 수요를 타기팅 하기 위한 비즈니스모델을 상상했다. 전 지구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추세를 카카오의 방식으로 구현한다는 목표였다.
2019년 5월 출범한 CIC는 종전의 AI부문에 카카오의 검색 조직과 전사 아지트(Agit)팀 등을 두루 품어 500명 규모로 꾸려졌다. 공학 박사로서 LG그룹에서 신사업 및 B2B 전문가 역량을 증명한 앤드류가 초대 대표를 맡았다.
앤드류는 2019년 5월 2일 CIC출범을 공식화한 타운홀 미팅을 통해 “국내에 디지털 기술로 비즈니스 혁신을 이끌어주는 대표 기업을 딱히 특정할 수 없었고, 대량 트래픽 처리 경험과 다양한 서비스, 기반 기술을 갖고 있는 카카오가 적임이라 생각해 합류했다”고 밝히며 “기업 고객들을 위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인에이블러(Digital Transformation Enabler)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비즈톡’이라는 프로젝트명을 달고 있던 카카오워크를 개발하던 2019년 12월 3일,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별도 법인으로 독립했다. ‘모든 것에 인공지능(AI)을 더해 연결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슬로건이 정해졌다. 카카오가 가보지 않았던 서비스형플랫폼(PaaS),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분야를 향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카카오의 다양한 비즈니스들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것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기업들과 직장인들을 향한 접점은 드물었다. B2C 서비스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온 카카오였지만, B2B 분야에서는 ‘신입생’과도 같았다.
법인 출범 1년차를 갓 넘어서면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발표한 투자 유치 소식은 IT업계를 술렁이게 했다. KDB 산업은행 설립 이래 최대치인 1천억 원 규모의 스케일업 투자를 이끌어 낸 것. 종합 업무 플랫폼 `카카오워크`와 `카카오i 클라우드`, 출시 준비 중인 데이터 분석 플랫폼 ‘카카오i 인사이트’ 등에 관한 서비스 운영 노하우와 인공지능 기반의 혁신 역량이 주효했다. ‘만약 카카오가 한다면?’이라는 궁금증과 기대감은 사람들의 일상을 한결 더 좋게 만들었고, 카카오를 성장시켰다. ‘만약 카카오의 인공지능 기술이 함께한다면?’이라는 산업계의 궁금증과 기대감이 몰고올 변화와 혁신의 임팩트는 한층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일터에서의 우리는 같은 존재이기도, 다른 존재이기도 합니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카카오이기에, 개인과 기업, 기업과 기업을 연결하는 새로운 경험을 더 잘 기획하고 만들어낼 수 있어요.
‘내 스마트폰에선 일상적으로 제공되는 기능이, 재미있는 요소가 왜 사내시스템에선 제공되지 않을까?’, ‘스마트폰에서 쉽게 접해볼 수 있는 서비스들을 신규 적용하는데 왜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 어떨 땐 불가능하다고 할까?’, ‘왜 앱스토어에선 싸게 쓸 수 있는데 왜 기업시장에만 가면 수십, 수백 배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와 같은 근본적인 의구심에서 우리는 출발했습니다.
AI 기술을 통한 생활의 혁신은 이제 갓 싹을 틔운 시점이에요. 싹이 자라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멋진 과정을 기대해주세요.” _ 앤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