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사진을 찍던 순간

오늘탐구생활 - 오늘의'좋아요'

by maybe




035. 사진을 찍던 순간


언젠가부터 안경을 벗었다. 공부를 하거나 두통이 있을 때나 안경을 썼다. 사진 찍는 일을 할 때는 촬영할 때만 콘택트 렌즈를 꼈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안경도 렌즈도 없었다. 난시가 심해서 멀리 보면 볼수록 흐릿하게 형체가 뭉개지는데, 나는 흐릿하게 보는 게 더 좋았다.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사진을 찍을 때 늘 핀이 안 맞았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거나 더러운 창문을 통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완벽하게 포커스가 맞은 사진보다 흐릿하거나 흔들린 사진이 좋았다. 오늘, 사울 레이터 사진전을 다녀왔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 '기록' 그 이상으로 의미를 두는 사람 중에 하나로서 그가 남긴 많은 사진들을 직접 보면서 내가 사진을 찍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와 나의 다른 점은 나는 모든 피사체와 배경을 흐릿하게 보았고, 그는 아주 작고 소홀할 수 있는 피사체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 그를 담은 영화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에서 그의 생각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사진에도 그의 성정이 담겨있었다. 관심을 두어야 그가 찍은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정확하게 보이는 것. 내가 담아낸 흐릿한 사진은 쓸쓸함이 남았는데, 그가 담아낸 흐릿한 사진은 이토록 따뜻함이 남는다. 영화 속 아직 살아있는 그는 말했다. 성공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날 아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본인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며, 서두르지 않고, 그냥 두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고. 눈이 몹시 내리는 장면에서도 느껴지는 따스함은 역시 그에게서부터 왔구나, 깨닫는다. 그가 찍은 사진을, 그리고 '사진'이라는 것에 더욱 큰 의미와 깊은 애정이 솟아난다. 날씨조차 포근해서 더욱 고마웠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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