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아는 사이

2021. 11. 18. 8:55

by maybe



"처음 알게 됐을 때 만나서 뭔가 발전할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시간만 흐르고 나니까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아 진 거지."


사석에서 처음 만난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를 알게 된 게 06년쯤이다. 그러니까 이미 15년쯤 그의 존재를 알고 지냈다. 내가 '오빠'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다. 간간히 연락 몇 번 하고, 내가 우편물을 몇 번 보냈었나. 그 외 서로에게 더 다가가지 않았다. 딱 그 정도의 거리. 멀리 있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사이. 뭐, 그런 관계도 있는 거지. 굳이 '발전'이랄 것도, 그럴 필요도,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아는 게 없다'라고 말하는 그에 대해 나는 뭘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장 자끄 상뻬를 좋아(존경)하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고, 프로 수준으로 커피를 알고, 관련한 일을 한다. 미국에 가기 전에 대구에 살았고, 지금은 서울에 살고, 가족은 제주로 이사했다는 건 알고 있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사진은 확실하지 않다. 그저 사진을 계기로 알게 됐고, 사진이라는 취미는 일상에 밀접해 있어서 싫어지기 힘들다 생각하니까. 그저 아직도 그는 사진을 좋아한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전의 전공이 뭔지, 왜 미국을 갔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이런 것들은 모른다. 앞으로 알게 될 지도 미지수다.


나와 그가 알게 된 사진 커뮤니티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뉴욕으로 갔고, 거기서 10년 넘게 살았다. 가끔 한국에 들어와도 타이밍이 어긋나거나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다가 19년 서울 카페쇼에서 처음 직접 만나게 된다. 드로잉 쇼를 하는 그에게 핀뱃지를 받았다. 이후에도 드링크쇼나 카페쇼에서 잠깐 얼굴을 봤다. 그러니까 이제야 15년 만에 처음으로 사석에서 따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미국에 가서 그림을 시작했고, 커피도 그때 빠지게 되었다는 걸 들었다. 나는 우리가 알게 된 그 커뮤니티에서 1년간 일을 했다는 걸 이야기했다. 지금은 닉네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조금 덧붙였다. 해묵은 이야기들과 가벼운 이야기들만 주고받았다. 다음에는 함께 밥을 먹자 말했지만, 또 만나게 될지 그것도 미지수다. 어쩌면 또 내년 카페쇼에서나 얼굴을 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관계도 있는 것이다.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여전히 '아는' 사이로 남아있는 관계. 그가 내 이름을 자연스레 부르고 나도 그를 오빠라 부르는, 친하진 않아도 불편하거나 어색하지도 않은 관계. 좁아졌다 말하는 현재의 인간관계에서 이 정도의 거리감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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