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연애.

2020. 9. 9. 0:00

by maybe



어쩌다, 떠올리게 되는 장면 하나하나가 나를 옭아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언제쯤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당신과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 모든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기억들이 나를 이루고 있는 큰 부분에 해당하기에.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면 따뜻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다가도 이내 가슴 한편에 묵직하고 뻐근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당신과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결국 다른 방향으로 감정이 흘러갔던 우리의 과정과 시절을. 잊지 못할 처음과 비로소 맞이하게 된 끝을. 하지만 ‘우리’라고 부르던 시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향해있고, 서로에게 닿아 있었다고 확신한다. 언제든 돌아갈 품이 있다고 여기던, 언제든 마주할 품이 되어주고 싶었던 날들이었다.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그 지옥 같았던 일상에서 당신과 하루를 나누는 5분의 통화가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툴렀고, 각자의 시점과 입장에서 이기적이었다.


당신 말대로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만큼 한심한 일이 또 있을까 싶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오만했었던 것 같다. 언제든 다시 서로의 곁에 머물 수 있을 거라고, 언제나 당신은 내게 말랑말랑한 모습 그대로일 거라고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묻어둔 감정과 이내 모른 척했던 우리 관계의 미지근한 끝이 내게 화살처럼 돌아오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신은 단단해졌고 나는 휘어졌고 이내 부러졌다.


“분기별 연애 말고 사계절 연애하고 싶어.”라고 지인에게 말하면서, 문득 생각해보니 사계절을 오롯이 함께 보낸 연애는 그가 유일했다. 대부분 1년을 채 못 채우고 담백하게 이별을 했으니까. 짧게는 한 달, 길어봐야 11개월쯤. 그런 짧은 연애들을 거쳐 서른이 되던 해에 그를 만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의 연애는 3년을 채웠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멀어졌던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별을 말하지 않은 채 오해 속에 3년을 더 흘려보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언제든 내가 스스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는 앞으로 영영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절대 빈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당신의 서른 살이 기대되고, 여전히 서른 살이 된 당신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고 또 아쉽다. 나는 결코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겪을 수 없는 모습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인정하면서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현재를 살고 있는 당신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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