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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Mar 26. 2022

052. 달거리

내몸탐구생활



052. 달거리


첫 월경이 시작했던 때가 아마 6학년 때. 내게 집에 여자 어른이라고 해봐야 한참 전에 생리가 끊긴 할머니뿐이었다. 물론 할머니는 내게 선배 여성으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의 화두는 생리가 언제 시작하느냐에 대한 이야기. 여기저기 이 불쾌한 첫 경험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정보망은 이제 막 시작한 또래들 뿐이었다.


처음 팬티와 이불에 묻은 이 핏자국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을 기억한다. 언젠가 올 것이었고,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싶었다. 피를 보는 게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으나 몸살처럼 내내 앓았다. 매달 생리 때마다 이불이나 팬티에 묻은 핏자국을 손빨래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다. 매달 아프고 귀찮고 당황스럽고 불쾌하고 냄새나는 시기를 몇십 년이나 보내야 하다니. 슬펐다. 행동에도 제약이 생겼고, 중요한 일에는 겹칠까 봐 걱정했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싫었다.


그나마 여중 여고를 나왔기에 위로가 되었다. 가끔 생리대가 날아다니기도 하고, 친한 친구와 같은 시기에 하기도 하고, 잘 듣는 생리통 약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여성으로서 우리의 연대는 고맙고 기특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완벽히 모르는 타인이라도 예상치 못한 생리가 시작된다면 기꺼이 돕고자 하는 의리가 있다. 매달 PMS에 생리통에 전후로 시달리지만, 또 안 하면 몸이 안 좋거나 불안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십 년 동안 매달 피를 쏟으며 보내왔다. 이제는 일부이자 일상이자 루틴이 되어버린 생리. 앞으로 내게 남은 달거리의 날들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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