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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Apr 06. 2022

063. 미주신경성 실신

내몸탐구생활



063. 미주신경성 실신


20대 중후반쯤 출근을 하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눈을 감고 있어도 어지럼증이 있었고, 다시 눈을 뜨니 이제는 시야가 하얗게 보였다. 이러다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겁이 덜컥 났다. 얼른 지하철에서 내렸다. 흐릿한 시야에서 더듬더듬 거리며 근처 자판기에서 찬물을 사서 의자에 앉아 몇 모금 마셨다. 한참을 앉아있어도 울렁거림과 어지러움이 잦아들지 않았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당시 만나던 사람에게 연락을 했고, 프리랜서였던 그는 그 이른 아침에 바로 달려왔다. 당장 병원에 가보자며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도 어지럼증이 계속 느껴졌다.


응급실에서 기초적인 검사를 받는데, 잠깐 일어서 있어도 현기증이 났다. 혈압을 재던 간호사가 화들짝 놀라며 의사를 불렀다. 젊은 의사는 내게 혈압이 너무 낮아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재보자고 했다. 누워서 재고, 앉아서 재고, 일어났다 앉아서 다시 쟀다. 잠시 일어났는데 또 현기증이 나서 비틀거렸다. 그녀는 한참이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혈압계를 보다가 청진기를 내 가슴에 댔다. 뭐라고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들리지 않았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기억을 잃었던 것 같다. 떨어진 혈압이 오르지 않는다고 했고, 링거 하나 맞으면서 잠시 누워서 쉬어보자고 했다. 잠깐 선잠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링거를 다 맞을 무렵 의사가 내게 와서 검사 결과가 나왔고,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앞에 앉아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미주신경성 실신'인 것 같다고, 이건 무슨 염증이나 질병 같은 건 아니고, 그저 하나의 '증상'이라고 했다. 젊은 여성들에게도 자주 나타나고, 본인도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너무 신경 쓰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은 되도록이면 피하라고 했다. 선생님, 그러면 회사도 못 가고 일상생활을 아예 못 할 것 같은데요. 그녀는 웃었다. 그렇죠? 의사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똑같아요. 하지만 항상 조심하세요. 저혈압도 있으니 컨디션이 안 좋다 싶으면 꼭 중간중간 쉬셔야 해요. 그녀는 또 내 손을 잡으며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네. 최대한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내게 그녀는 눈웃음을 지었다. 병원을 나오며 바로 출근을 했었나,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10대 후반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교회 행사 연습을 하다가 잠깐 쉰다고 누웠던 내가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희미하게 의식은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 말소리가 물속에 있는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그때도 응급실에 갔다. 각종 검사들을 하고 의식은 돌아왔으니 집으로 갔다가 결과가 나오면 다시 오라고 했다. 그날 제법 놀란 아빠는 일을 쉬고 병원에 같이 갔다. 신경외과 의사는 건조한 말투로 '간질'의 초기 증상인 것 같다고 했다. 뇌파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다고, 온 김에 MRI도 찍어보자고, 아직 초기이니 발작 증세는 없을 테니 꾸준히 약을 먹어보자고 했다. 아빠도 그랬지만 나도 꽤나 큰 충격을 받고 그 이후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초반 1여 년 간 약을 꾸준히 받아먹었다. 당시에도 심한 불면증이 있었고,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안정제나 수면유도제 같은 것도 같이 처방받았다. 의사는 동일 증상이 있는지, 약은 잘 먹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등의 같은 질문만 했다. 나도 증상은 전혀 없다, 약은 잘 먹었다, 잠은 여전히 안 온다고 똑같이 대답했다. 20살이 되면서 과감히 약과 병원을 끊었다. 사실, 그전부터 한 달 치의 약을 받아오면 모두 쓰레기통이나 변기에 버리곤 했다. 그리고 7년 후에 실신의 증상이 있다고 진단이 내려졌다.


약 10년이 또 흘렀다. 출근하다 몇 번씩 버스에서 내렸다 타기를 반복했던 날도 있었고, 지하철에서도 멀미가 느껴져 내려서 한참을 앉았다 다시 탔던 적도 있었다. 그냥 내가 안고 가야 할 나의 일부라고 인정하고 나니 더 이상 탓을 하지 않게 됐다. 질병이든 증상이든 결국 내가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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