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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Apr 09. 2022

066. 촉 (육감) (1)

내몸탐구생활



066. 촉 (육감) (1)


'촉'이 좋다는 말이 사전에 등록된 말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다. 그 '촉'과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떠올려 봤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고, 그렇게 했을 때 큰 위험을 비껴갔던 적이 몇 번 있다. 10대 때는 거의 정해진 루틴과 장소를 반복했으니 딱히 그런 건 없었지만, 20대 때부터 경험한 꽤 놀라운 에피소드 몇 가지를 써볼까 한다.


20살, 졸업을 하고 무작정 기차 여행을 떠났다. 부산에서 시작된 이 여행은 울산, 대구, 창원, 마산, 경산을 거쳤다. 어느 날 동갑인 사촌과 친척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디인지, 대구가 아닌 건 맞는지 몇 번을 물었다. 며칠 전 대구로 떠나면서 친구와 아빠한테 언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지 언질을 해둔 상태였는데, 계획보다 빠르게 부산으로 돌아왔던 터라 지금은 부산이라고 얘기하며 이유를 물었다. 대구에 불이 났다는 소리에 대구가 작은 곳도 아닌데 무슨 이런 호들갑을 떠느냐고 웃었다. 친구가 다행이라고 얘기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아빠였다. 아빠도 똑같이 물었다. 어디냐고, 지금 대구에 있느냐고. 사촌한테 전화를 바꿔주며 대구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어리둥절했던 사촌과 나는 저녁에 뉴스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익숙한 대구 시내에 가득한 연기와 가득한 차들, 불탄 지하철의 참담한 상황을 보는데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이 났던 곳은 대구역과 가까운 중앙로였고, 불이 났던 시간은 내가 부산으로 가기 위해 예매했던 기차 시간과 가까웠다. 이틀 전에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면서 부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모든 일정을 취소하면서 예매했던 기차 시간을 앞당겼다. 이틀 전 내가 있었던 그 거리였고, 하마터면 그날 내가 탔을지도 모를 열차였다. 너무 큰 비약이라고? 아니다. 사고는 언제 누구한테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여행이 끝나고 만난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 "맞다, 란아 너 기차 타고 떠난 날 내가 배웅했잖아. 너 가고 나오는데 역 앞에 불이 제법 크게 났어. 근데 대구에서도 불이 났잖아. 괜히 소름이 돋더라." 우연이겠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해, 내가 살던 집에 불이 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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