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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Apr 10. 2022

067. 촉 (육감) (2)

내몸탐구생활



067. 촉 (육감) (2)


20대 때는 혼자 배낭 하나 메고 국내 여행을 주로 다녔다. 정처 없이 별다른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다녔던 때에도 '촉'에 따라 급히 지역을 이동한 적이 있다. 보성에 갔을 때였다. 전라도 여행은 처음이었고, 이왕 온 거 땅끝까지 가보자 하며 기차가 가는 동선으로 아래로 아래로 가던 중이었다. 순천으로 향하던 중에 녹차밭은 꼭 가보고 싶어서 보성에 들렀는데, 기차역에서 녹차밭으로 가기 전 만났던 할머니가 있었다. 육교를 건너면서 큰 짐이 무거워 보여서 잠시 도와드렸던 것이 고마웠는지, 버스를 기다리던 시간 동안 우리 집에서 하루 자고 가라고, 녹차밭에서 조금만 더 가면 작은 해변가에 우리 집이 있다고, 손주 생각도 나고 본인도 적적하니 같이 밥 한 끼 먹자고 하셨다. 물론, 혼자 뚜벅이로 다니던 여행길에서 민박도 자주 묵었고, 뚜렷한 일정이 없던 나는 할머니의 부탁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으나 왜인지 모르게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막연하게 가기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소의 나라면 분명 따라나섰을 텐데, 그때는 정말 내키지 않았다.) 보성은 녹차밭만 들렀다가 잠시 머물고 조금 힘들더라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숙박을 하고 싶었다. 죄송하다 사양하고 오는 버스를 함께 탔는데, 내가 먼저 내리며 인사를 건네니 할머니는 또 아쉬워했다.


녹차밭에서 산책하듯 걷는데 각각 여행 온 뚜벅이 여행자들과 어울리게 됐다. 각자의 여행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의 사진도 찍어주고 꽤 즐거웠다. 기차 시간까지 살짝 여유가 있어 같이 식사를 할까 하면서 얘기하다가 율포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 작고 고즈넉한 해변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아까 만난 할머니가 생각났다. 분명 이 근처에 사실 것 같은데,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될 줄 알았으면 할머니랑 식사나 같이 할 걸 그랬나 싶었다. 일행과 식사 후 헤어지고 나는 늦은 저녁 기차를 타고 순천으로 떠났고, 순천에서 여수로, 땅끝으로, 또 부산을 거쳐 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났나, 당시 추석 연휴가 5일로 꽤 길었다. 이렇게 집에서 보낼 수는 없다며 다시 전라도로 떠난 여행. 목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해남으로 가면서 뉴스를 보게 된다. 어부 노인이 20대 커플과 여성 둘을 배 위에서 밀어 살해했다고 한다. 그 첫 사건은 내가 보성에 머물렀던 그다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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