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좀 다녀올게
4시 반, 눈이 번쩍 뜨였다. 알람이 바로 울렸다. 이른 시간의 비행이고 빠르게 공항 이동을 위해 일찍 일어났다. 자기 전에 미리 가방을 싸 뒀기 때문에 충전기 등 꺼내 뒀던 짐만 마저 정리하고, 티팟에 물을 올려두고, 씻고, 옷을 입으면서 미리 사둔 반미를 먹었다. 빵은 아침까지 바삭했다. 배낭이 매우 무겁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2배로 힘들다는 걸 이미 경험했다. 아침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
5시 10분, 배낭을 메고 호텔을 나선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라 아직 희미한 푸른 어둠이 깔려있었고, 새벽에 비가 오다 말다 했기 때문에 습했다. 어제도 오늘도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어제 걸어왔던 길을 동일하게 되짚어 걷는다. '발리 커피' 파란색 간판의 카페는 시간이 된다면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단횡단을 했던 차도에는 어제보다는 차가 없었다.
5시 40분, 공항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 또 방문하게 될 곳. 지금은 발리로 가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있지만, 집에 갈 때는 어떤 마음일까. 아쉽다, 가기 싫다 생각하게 될까. 돌아갈 곳에 대한 안도일까. 퀵패스를 추가했더니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체크인을 했다. 수하물을 부치고 티켓을 받아 들고 출국장으로 바로 들어간다. 역시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 최고구나. 돌아갈 때도 꼭 퀵패스 추가해야지, 생각했다. 게이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텅 빈 의자가 보라색이었다. 단순한 보라 팡인은 기분이 좋아졌다.
6시 15분, 탑승 게이트 바로 위에 카페가 있었다. 아침에는 아아지. 아아는 국룰 아닙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껴 마시며 어제의 여행기록을 정리했다. 시간 순으로 기억날 때 기록으로 남겨둘 생각이다. 말 많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글도 긴 호흡이 된다. 주절주절 말이 길어지지만 괜찮다. 세세하게 기록할수록 나중에 추억 여행을 하기 좋다. 글을 쓰고, 읽고, 사진을 찍거나 보고, 기지개도 켜고, 스트레칭도 했다. 호텔에서 좀 잤더니 몸이 제법 가뿐하다. 공항 노숙했으면 어쩔 뻔했니. 돌아갈 때는 새벽 2시 비행기라 어쩔 수 없이 노숙이겠지만, 뭐 어때. 어차피 집으로 가는 걸.
8시 20분, 이제 줄을 선다. 비엣젯 항공이 연착이나 지연이 많다더니. 어제는 운이 좋았던 걸까. 예정보다 늦은 출발. 숙소에 픽업을 부탁했기 때문에 메시지를 보내 뒀다. 공항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할 때 마주쳤던 두 커플이었다. 아마 그들도 나를 발견했을 때 나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우리 출발할 때 봤던 사람이다. 발리 가나 봐. 말 안 했을 수도 있고. 외국에서 행선지가 겹친다는 건 그들과 내가 같은 선택을 했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겁다. 인스타에 올려둔 사진을 보고 지난 발리 여행에서 같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한 이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리고 나는 지난 여행에서 만난 이들을 또 만나러 간다.
9시, 기장이 비행기의 이륙을 알린다. 하지만 비행기는 요지부동이다. 8시 10분 출발이었는데, 9시 15분이 되어서야 엔진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들이 나란히 나란히 줄 서서 이륙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 나는 여행을 갈 때 창가에 앉으면 이륙과 착륙 순간을 타임랩스로 촬영한다.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타임랩스 촬영은 오랫동안 폰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비행기가 뜨기 전 대기시간이 길면 길수록 잠이 온다. 아마 긴장이 풀리면서 비행기 타기 전 쌓인 피로함이 몰려와서 그럴 테고, 내가 생각하기에 엔진으로부터 오는 일정한 진동과 소음이 지속 반복되어 잠이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