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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Sep 27. 2022

물 공포가 있지만, 다이버입니다

005. 스쿠버다이빙



얼마 전 다이빙 로그 수가 50을 넘었다. 말 그대로 50번 바닷속 탐험을 했다는 뜻이다. 수백 번 입수를 해본 사람에게는 그리 대단한 숫자가 아닐 지라도 내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숫자이다.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을 때 로그 수 100이 목표였다. 100번 정도 바다에 들어가면 아주 조금은 물과 친해지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며 잡았던 숫자였다. 벌벌 떨면서도 바닷물에 입수했던 횟수가 50번이 되었다니. 얼마나 뿌듯하고 대견한가.


나는 물 공포와 파도 트라우마가 있다. 10여 년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내 안의 공포를 인지하게 된 지도 10년이 되었다. 파도에 휩쓸려 물 안으로 빨려 들어갔던, 트라우마로 남은 그 순간을 기억한다. 무의식적으로 잊고 살았던 공포와 다시 만난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도 여전히 가슴팍까지 물이 차오르면, 파도가 넘실거리면 공포에 휩싸여 얼어붙는다. 고래는 만나고 싶은데 물 공포가 있다니! 사실 많이 억울했다. 누군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고래를 만나는데, 나는 공포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장애를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공포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장애에 적응하며 나은 방법을 찾아 살아가는 것처럼 공포도 마찬가지였다. 내 안의 공포를 이겨내거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친해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다. 일단, 장비를 통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고, 라이센스 과정은 전문 강사에게 배우고 공부해서 시험을 봐야 했고, 버디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무턱대고 시작했다. 포기를 하더라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해지려면 자꾸 만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섭지만 어떻게든 친한 척해보려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50번이나. 그러니 내게는 이 ‘50’이라는 숫자가 훈장 같다. 드디어 반이나 해냈다.


매번 무서워서 긴장하고 벌벌 떨면서도 바다에 들어가는 이유는 또 있다. 바닷속은 하나의 우주 같다. 온몸에 힘을 빼고 있노라면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땅 위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하고 예쁜 생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외계 생물 같은 느낌이 든다. 지구 밖 우주는 가본 적 없지만, 지구 안 우주는 아주 일부 경험해본 셈이다. 바다는 언제나 무섭지만, 바닷속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마치 꿈을 꾼 듯하고, 물살에 몸을 맡기며 떠다니는 경험은 아찔하고 또 재밌다. 그러다 조류에 휩싸이면 엄청난 공포가 몰려오지만, 또 용기를 내어 바다에 뛰어든다.


공포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매번 꾹꾹 눌러 참아내는 훈련을 하고 있다. 약간은 오기로 버티기도 했다. 죽을 뻔했지만 결국 죽지 않았고, 무서워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안다. 무서운 마음보다 재밌는 마음을 더, 어려운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더, 고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더 키워내는 수밖에 없다. 50번의 경험을 더해 마침내 100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되더라도 바로 고래와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내 안의 공포와 마주 보는 용기가 더 커졌다고, 적어도 물과 많이 친해졌다고 큰소리 빵빵 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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