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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Oct 02. 2022

재즈만큼 오랫동안 깊게 빠져있던 것도 없지

010. 재즈



날이 추워지니 와인이 맛있다고, 얼마 전 와인을 즐기는 절친이 말했다. 나도 추워지면 유독 맛있어지는 게 하나 있다. 재즈다. 거기다 재즈는 뭐든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어떤 음식이든, 어떤 장소든 찰떡같이 어울리고, 와인도 좋고, 뱅쇼도 좋고, 맥주도 좋고, 따뜻한 사케와도 어울린다. 아침에 들어도 좋고, 점심이든 저녁이든 새벽이든 다 잘 어울린다. 개성 넘치는 악기들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멜로디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만들어 내는 모든 순간이 즐겁다. 내가 특히 사랑하는 건 콘트라베이스의 둥-둥- 울리는 그 낮은 저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음악 취향이 계속 바뀌어 왔다. 재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다. 누군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뭐냐고 질문한다면, 어김없이 나오는 대답은 ‘재즈’다. 본격적으로 밴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유독 베이스로 깔리는 저음을 좋아했는데, 찾고 찾다 보니 재즈 베이스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낮에는 밴드 음악을, 새벽에는 재즈를 들었다.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들을 유독 마음에 깊게, 또 오래 담아두게 되는 것 같다.


수많은 변주와 합주가 모여 하나의 예술이 된다는 재즈는 그래서 인생과 닮아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재즈를 듣고 있노라면 어떠한 이야기나 대화를 주고받는 느낌이 든다. 나도 모르게 상상했던 순간도 많았고, 꿈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재즈를 듣고 있노라면 누구든 나와 비슷한 감상에 젖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재즈에 대한 표현들을 영화에서 만날 때마다 공감하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는 했다. ‘본투비블루, 치코와 리타, 라라랜드, 어느 날 사랑이 걸어왔다, 소울’ 같은 영화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처음 생겼을 때부터 항상 가고 싶었는데 늘 가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매번 무슨 사건이 있거나, 아프거나, 일을 하거나, 선약이 있거나 등의 사정이 있었다. 미리 시간을 빼놓아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순간 포기하며 지내왔다. 기회가 생기겠지, 하면서. 그에 비해 짝꿍은 코로나 이전까지는 재즈 페스티벌을 거의 매년 갔던 모양이다. 내가 가지 못했던 순간에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니.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나와는 반대의 입장이라 아주 조금 샘이 났다. 올해는 짝꿍이 먼저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우리의 기념일을 기념하며 오랜만에 가보자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루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겨우 4개의 스테이지만 들었을 뿐이지만 매우 여유 있었고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재즈의 분위기에 취하는, 기분 좋은 나들이였다. 내년에는 사흘 모두 시간 내어 가고 싶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워지리라 믿는다. 재즈 듣기 참 좋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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