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커피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 20년이 되어간다. 단 맛의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커피가 유일한 기호 식품이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습관 중의 하나가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커피를 꼭 마셔야 한다. 커피를 들고 출근하여 커피를 마시면서 오전 업무를 하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주말에도 무조건 한 잔은 마셔야 한다.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카페인 의존이 심하다고 하는데, 정말이다. 커피가 없으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커피를 좋아하는데 카페인에 매우 취약하다는 건 좀 억울하다. 그래서 오후 3시 이후에는 최대한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오후에 마실 때는 웬만하면 디카페인으로 마신다. 요새는 디카페인 있는 매장이 많아져서 다행이다.
제목의 ‘링델만 아시네도인’은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뜻한다. 커피 원두 이름이다. 반대로 적은 이유는 결국 취향의 끝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고 매번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커피는 그렇다. 커피는 정말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잘 마시지만, 아주 가끔은 가장 클래식한 맛을 다시 찾게 된다. 나의 커피 취향의 처음은 만델링과 예가체프다. 만델링은 산미가 없고, 예가체프는 산미가 있다. 그래서 커피 좀 안다는 사람은 둘의 조합을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맛을 따지기보다는 커피의 첫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예가체프는 카페에 드립 커피가 많지 않던 시절에 우연히 맛을 보고 홀딱 반해 버렸다. 커피 소비는 늘어났지만 국내에서는 산미 있는 커피를 기피하던 때였다. 그래서 예가체프 원두를 다루는 카페를 발견하게 되면 그곳만 찾아갈 정도로 꾸준히 마셨던 커피였다. 물론 한동안 유행하던 비싼 게이샤 원두도 충분히 맛있지만, 드립으로 내린 예가체프를 마시면 언젠가 처음 마셨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원두의 이름을 듣고 이름조차 예쁘다고 생각했다. 원산지에서 온 이름이고, 현지인은 ‘이르가 체페’라고 부른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만델링 얘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수마트라 섬의 만델링이라는 어느 부족이 재배하던 원두라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가보기 전부터 내가 좋아했던 커피가 만델링이라는 사실이 재밌다. 나를 아는 이들은 내가 ‘발리 예찬론자’라는 걸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발리를 좋아한다. 발리에 한 번 다녀온 이후로 인도네시아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막상 발리에 가면 만델링 보다는 매번 롱블랙을 더 마시게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나오는 커피라고 해서 다들 마시지는 않는 모양이다. 여담으로, 만델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태껏 딱 한 번 만나봤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그분도 만델링을 좋아하는 이유로 나와 똑같은 이유를 붙였다. “만델링은 식어도 맛있어요. 식어도 맛있는 유일한 커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