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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May 07. 2022

094. 경구 피임약

내몸탐구생활



094. 경구 피임약


피임약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생 때. 당시 나는 1학년이었고, 무척 좋아하고 따르던 3학년 언니가 있었다. 언니의 소지품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아주 작은 알약이 촘촘히 들어있었고, 숫자가 쓰여있는 약은 몇 개가 비어있었다. 처음 본 약이 신기하다고 생각했고, 언니가 어디가 아픈지 걱정도 되었다. 한참 후에야 그때 언니가 먹던 작은 알약은 경구 피임약이라는 걸 알게 됐다. 20대 초반에 스트레스로 생리를 몇 번 놓치고 병원을 가서 처방받은 약을 처음 꺼내보고 그때 언니가 먹던 약과 같은 거라는 걸 알았다. 언니가 생리 때마다 심하게 아파서 매번 진통제를 먹던 것도 기억났다. 매일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과 호르몬을 억지로 통제해도 되는 건지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다. 당시 의대를 다니던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피임약에 대해 들었다. 피임뿐만 아니라 생리 주기가 불규칙한 여성들은 꾸준히 복용하기도 한다고, 다른 일반 약에 비해 위험한 약이 아니니 굳이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생리 주기가 다시 돌아온 이후에도 나는 여행 계획을 위해서나, 피임의 목적으로 주기적으로 복용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몇 번 약을 빼먹고 거듭 실패를 하게 된 이후 잘 먹지 않게 됐다. 성기에 씌우기만 하면 되는 남성의 피임에 비해, 한 달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히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여성의 피임은 얼마나 불편하고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가. 새삼 또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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