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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May 06. 2022

093. 생리컵



093. 생리컵


여성으로 살면서 가장 많은 소비를 하게 되는 항목은 '생리대'다.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거의 매달 짧으면 3일, 길면 7일은 생리를 하는데, 여성에게는 어쩔 수 없이 중요한 필수품이다. 평생 내가 소비해왔고, 소비하게 될 생리대를 가늠하면 얼마나 많을까. 20년 넘게 매달 생리를 했던 역사만큼, 내게 맞는 생리대를 찾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거의 모든 브랜드의 생리대를 종류별로 사용해봤던 것 같다. 양이 적을 때, 많을 때, 끝날 때, 잘 때, 운동할 때, 여행 갈 때 등 상황마다 사용하는 생리대의 종류와 수량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척 피곤하기도 했다. 흔히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로부터 탐폰과 면생리대를 꽤 오래 사용했고, 마침내 정착하게 된 것은 생리컵이다.


여성들은 생리대로 인해 땀이 차거나, 피부가 짓무르는 경험을 누구든 해봤으리라. 자주 교체해도, 면과 같은 생리대를 사용한대도, 실제 면으로 된 생리대를 사용해도 상황은 비슷했다. 탐폰을 처음 사용했을 때 느꼈던 이질감과 동시에 가졌던 약간의 해방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몸속에, 심지어 질 속에 직접 무언가를 넣는다는 건 당시 10대였던 내게도 큰 도전 같았다. 심지어 엄마나 언니같이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선배 여성이 내게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일단 시도해보고 경험해봐야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알게 된다. 물론 겁을 내거나 아프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무섭거나 아프지는 않았고, 조금은 신기했던 쪽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생리 중에도 좀 더 '자유롭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생리컵을 알게 되고 바로 해외 직구를 했다. 생에 최초의 해외 직구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유통하는 곳이 없었고, 불법이기도 했다. 사용해보고 나랑 안 맞으면 다시 탐폰이나 면생리대를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탐폰을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생리컵을 넣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었다. 크기를 선택할 때 조금 고민했는데, 이것도 탐폰 경험으로 내 질의 깊이에 대해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다. 이런 나도 처음 사용할 때는 불편했다. 탐폰보다는 크기가 크고, 접어서 넣는 것이 어려웠다. 생리혈을 처리하거나 밖에서 세척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점점 사용할수록 익숙해지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감을 잡은 후로는 이토록 편할 수가 없다. 잘 때 샐까 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여행 일정과 겹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수영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매번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때마다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금의 나는 다시 생리대로 돌아갈 수 없다. 얼마나 편하고 좋은 시대에 살고 있나. 새삼 감사하게 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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