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도 Apr 26. 2022

수분 드로잉

산속에서 슥슥슥


 연두와 초록이 섞인 싱그러운 산에 밤 사이 비는 촉촉이 수분을 더해 주었다. 산은 깊은 흙향과 풀향으로 내쉬는 숨을 호강시킨다. 한발 한발 흙을 내딛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확 트인 평지가 시원하게 나를 반기고, 그곳에 오래전 자리 잡은 정자에 신을 벗고 털썩 앉는다.

준비한 종이와 연필을 꺼내놓고 풍경을, 운동하는 사람을, 초록에 쌓인 풀들을 그려본다.


산을 오르던 분들이 하나, 둘 정자에 앉는다. 한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좋은 거 배우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림 그려 보실래요?."

"에휴... 난 그림 하나도 못 그려~."

"그냥 선 하나만 그으시면 돼요. "

나는 종이를 북 뜯어 몇 장 드린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 없어요. 손 가는 데로 그려보세요~."


어머니는 종이를 받아 연필을 움직이신다. 나무의 몸그리시고 초록 잎을 그려 넣으신다.

나도 옆에서 슥슥 그림을 채운다.

공기도 촉촉, 마음도 촉촉해지는 시간.

수분이 가득한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명이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