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 드로잉

산속에서 슥슥슥

by 안도


연두와 초록이 섞인 싱그러운 산에 밤 사이 비는 촉촉이 수분을 더해 주었다. 산은 깊은 흙향과 풀향으로 내쉬는 숨을 호강시킨다. 한발 한발 흙을 내딛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확 트인 평지가 시원하게 나를 반기고, 그곳에 오래전 자리 잡은 정자에 신을 벗고 털썩 앉는다.

준비한 종이와 연필을 꺼내놓고 풍경을, 운동하는 사람을, 초록에 쌓인 풀들을 그려본다.


산을 오르던 분들이 하나, 둘 정자에 앉는다. 한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좋은 거 배우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림 그려 보실래요?."

"에휴... 난 그림 하나도 못 그려~."

"그냥 선 하나만 그으시면 돼요. "

나는 종이를 북 뜯어 몇 장 드린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 없어요. 손 가는 데로 그려보세요~."


어머니는 종이를 받아 연필을 움직이신다. 나무의 몸을 그리시고 초록 잎을 그려 넣으신다.

나도 옆에서 슥슥 그림을 채운다.

공기도 촉촉, 마음도 촉촉해지는 시간.

수분이 가득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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