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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도 May 17. 2022

대머리 나무

"나무가 대머리 되겠다. 부끄러워하겠어."

몇 개 남지 않은 잎을 꼭 쥐고 있는 나무를 보던 7살 귤이는 말했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11월 끝자락 나무는 월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몸과 마음에 변화가 오는 시기. 한참 성장하는 귤은 성장통을, 성장이 멈춘 나는 퇴보에 따른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귤이는 언젠가 맺을 열매를 위해 잎을 내려 애쓰고 있고, 나는 대머리가 되는 시간을 늦추려 애쓰고 있다.


연두 싹이 움트고 분홍 꽃을 피우던 나무들이 초록 물결을 일어내고, 하얀 아카시아꽃이 바람에 내달리는 날. 휘 휘 바람에도 일 없다는 듯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단단히 붙은 잎을 자랑하는 나무들을 보니 지난 나의 청춘들이 흩날린다.

이제 너희도 나도 대머리가 되겠구나. 피식 웃음이 난다.


흔들리는 초록을 보며 조용히 마음에 새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끄럽지 않을 여유를.

꼭 쥔 잎을 자연스레 놓을 용기를.

줄기마다 서린 생의 아쉬움을 남김없이 뿌리에 내려 얼지 않는 나무가,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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