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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 Aug 08. 2023

나는 왜 너에게 너그럽지 못할까?

개학 1일차부터 한바탕 육아전쟁

오늘 여름방학을 마치고 처음으로 등원하는 아이와 한바탕 등원 전쟁을 치루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대충 달래주고 보내면 될 일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름감기로 인해 몸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아이는 또 어린이집 첫 적응기간 때처럼 눈을 뜨자마자 아빠가 어디 갔냐며 소리치고 울어댔다. 처음 몇 번은 아빠는 일하러 회사가셨지~ 아빠는 이따 저녁에 오실 거야~ 밥 먹고 버스 오기 전에 나가야해~ 하고 나름 타일러보았지만 내 말은 전혀 듣지도 않고 울음떼부터 시작하는 아이를 보며 나의 이성의 끈은 툭-하고 끊어지고 말았다.

아침으로 준비해주었던 간편김밥(김에 싼 밥)과 물을 치워버리고 그럼 그냥 씻자고 이야기 하니 배고파서 밥을 먹을거라며 난리가 났다. 이 때 그냥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니가 안 먹는다고 했잖아!! 하며 먹지마!!라고 했더니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오은영 박사님이 보았다면 "어머님 잠깐만요!"하고 나를 말렸을 참이었겠지. 1차 전쟁은 나의 완벽한 패배. 눈물에 맘이 약해진 나는 아이를 다시 식탁에 앉히고 밥을 주었더니 다른 때보다 잘 먹는 건 내 기분 탓이겠지-


여차저차 아침을 다 먹어가는데 마지막 두 세개를 남기고 더이상 밥을 먹지 않고 자꾸만 딴짓을 해댄다. 어린이집 버스가 오기까지 30여 분이 남았던 시점. 아직 치카도 안했고, 세수도 안했는데.. 저러다 또 늦을텐데 하다 이제 그만 먹자 하고 치워버린 나의 성급함. 아이는 또 다시 난리가 났다 밥을 더 먹을 건데 왜 치우냐고. 그렇게 시작된 2차 전쟁. "더 먹을거야!" "니가 안 먹었자나!"하며 실갱이하던 와중에 아이의 울음보가 또 터져버렸다. 이미 어린이집 적응 기간 동안 여러차례 겪었던 울음 떼가 또다시 시작되자 나는 목이 아팠던 것도 잊고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라고 큰 소리를 내었다. 아이에게 소리지르지 말자 다짐했던 순간들이 무색하리만큼 큰 소리였다. 조금 더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역시나 나는 본전도 건지지 못한 채 더 강해진 아이의 비명과 울음을 고스란히 들어야했다. 다른 때와 다르게 무섭게 울어대던 아이를 보며 이러다간 곧 내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들었다. 오히려 정서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건 내쪽인데 퍽이나 억울했다.


울어재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를 하염없이 지켜보다 방으로 들어갔더니 방까지 쫓아와 우는 아이. 엄마도 너만했을 때 어린이집 가기 싫다며 그렇게 울었다는데... "너랑 똑같은 새끼 낳아 키워봐"라고 했던 할머니의 저주가 기가 막히게 들어서는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마음에 사리가 하나씩 더 생긴다. 모든 게 내 업보이니라. 다른 때 같았음 대충 달래주고 말 것을 오늘은 몸도 아픈 나에게 이렇게 난리치며 우는 아이가 너무 야속하기도 하고, 어린이집 적응할 때마다 매번 울음으로 나의 진을 빼놓는 아이애개 화가 나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을 흘렸다. 아이에게 제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라는데.. 오늘 나쁜 짓 두번이나 했네. 소리도 지르고, 게다가 울기까지. 마음 여린 우리 아이는 내가 우는 모습을 보더니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신파극이라도 찍듯 둘이서 부둥켜 안고 울다가 어린이집 버스는 먼저 보내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늦은 등원을 하기로 했다. 


한편의 신파극 덕분인지 치카도 잘하고 세수도 잘하고 어린이집에 가려 나왔는데..... ㅎㅎㅎㅎ 어린이집 방향으로 차를 틀자마자 다시한번 울며 불며 비명을 지르는 아이. 결국 집에서 5분이면 가는 어린이집을 30분이 넘도록 못 들어가고 있다 아이의 비명을 들은 담임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강제 등원을 시행하며 오늘의 등원 전쟁은 끝이 났다. 아이를 보내고 3분도 안돼서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는데, 친구들이 와서 인사하고 달래주니 벌써 그쳤단다. 그쳐준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오늘 아침 너와 나의 2시간 울음전쟁을 3분만에 끝내준 건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든다. 나쁜시키.


아이를 보내고 병원에 들러 주사도 맞고 약도 타왔다. 여름 방학 내내 영화관, 서점, 키즈카페, 물놀이터 등 안 데려간 데가 없다 보니 이렇게 몸살이 난건데. 내 진심도 몰라주는 것 같은 네가 오늘 유독 야속하게 느껴져 스타벅스에 가서 아이스 카페모카를 벌컥벌컥 마시다 보니 야속함은 어디가고 또 엄마인 내 마음엔 미안함만 가득 남는다. 아침에 울기 시작할 때 꼭 안아주며 달래줄걸, 천천히 밥 먹을 때 옆에 가서 좀 도와줄걸,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잘 꼬시면서 어린이집 버스 시간에 맞춰볼걸, 다른 때 같았으면 잘도 시도해봤을 일들을 내 몸 하나 아프니 나는 오늘 또 아이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화만 낸 모지란 엄마가 되었다.


우리가 보내는 하루는 매일 매일이 처음이자 마지막 하루인데, 너의 하루 시작을 엄마의 화와 눈물로 채워줘서 미안해. 늘 재밌고 행복한 이야기들로만 채워주고 싶은데 아직도 부족한 나는 너에게 잘해야지 싶다가도 한번씩 이렇게 무너지고 만다. 하원한 너에게 화해의 의미로 건넨 젤리 한 봉과 꼬깔콘 하나로 엄마의 부족함을 이해해달라기엔 택도 없이 보이겠지만, 나는 네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으로나마 오늘 엄마의 과오를 잊어주길 바라는 염원을 전해본다. 너그럽지 못한 엄마라 미안해- 내일은 웃는 얼굴로만 지내는 하루가 되길 바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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