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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 Oct 13. 2017

평일 오후 광화문 교보문고를 거닐다.

책 제목만으로도 위로 받은 하루

회사를 그만둔 지도,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길었던 추석 연휴를 이용해 발칸 반도 여행을 다녀왔으며, 회사를 다니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도 마음껏 했다. 그 중 최고는 단연 늦잠자기.

매일 저녁마다 출근준비를 위해 세 네 개씩 맞춰놨던 알람도, 이제는 필요 없기에 알람을 끄고 자고 싶은 만큼 푹 잤다.


그렇게 오랫 동안 쉬다가, 오랜 만에 광화문 교보문고로 발걸음을 했다.

광화문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상당히 멀기 때문에 즐겨 찾지는 않지만, 책 향기가 그리운 날에는 습관처럼 광화문을 찾는다. 대형 서점이 광화문 교보문고 한 곳만은 아닌데, 아마도 머릿속에 '독서' 하면 떠오르는 것이 '광화문 교보문고'이기에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평일 오후에 광화문을 찾은 것이 얼마 만인던가.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곳에는 늘 사람이 많다. 곳곳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친구, 연인들을 만나 어떤 책을 살까 돌아다니는 사람들, 아이들 문제집을 한 손에 가득 들고, 에세이 코너를 서성거리는 어머님들,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님, 할아버님들.

그래서 오늘은 나도 이들 틈 사이에서 책 향기를 따라 이곳 저곳 돌아다녔다.


그렇게 서점 곳곳을 돌아다니다 내가 멈춰선 곳은 '에세이 코너'. 수 천, 수 만권의 책에 둘러 싸여 있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 코너에 발걸음이 멈추는 것을 보면, 취향은 숨길 수가 없는가 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에세이 코너를 돌며,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에 집중했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나는 회사를 그만 둔 용감한 백수의 대표로서(!ㅎㅎㅎㅎ), 나보다 훨씬 이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삶을 찾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너무나 큰 모험이기에, 나처럼 아무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있긴 있는 걸까 반신반의하며 에세이 코너를 둘러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방황했지만 새로운 삶을 찾아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꽤 많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 아직은 괜찮구나 싶어서.


그런데 에세이 코너를 돌다, 나도 모르게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이 책 저 책을 보며 '회사 스트레스'에 대해 적어놓은 글귀를 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이전 직장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생각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전 직장에서 죽을만큼 힘들었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곳에서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 받아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내 실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을 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그 분야에 커리어를 쌓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를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컨텐츠 기획자'로서의 업무를 맡게 될거라 소개 받았는데, 직접 맡았던 업무는 '온라인 마케팅', 아니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B2B 영업'을 지원하는 '쉐도우 마케터'로서의 역할이었다.

처음에는 그럭 저럭 재밌었다. 회사 블로그 운영을 맡았기에, 내가 기획을해서 연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컨텐츠 기획' 업무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 외 90%의 업무는 박람회 업무를 따라 나가거나, 박람회 업무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는 일, 그리고 온라인 광고를 진행하는 일 등등이었다. 물론 이전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이 정도의 업무를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괴로웠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컨텐츠 기획 업무 능력은 점점 퇴보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회사 상사와도 상의를 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금 잘 하고 있잖아. 앞으로도 잘 할 거라고 믿어' 였다. 그렇다. 이 회사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쌓고 싶은 커리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회사에서 요구하는 업무들을 잘 해낼 사람이 필요했던 거고, 나는 거기에 합격점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됐다는 것이었다.


며칠 밤 낮을 고민했다. 그래, 이대로 여기에서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돈도 벌고 좋잖아. 온라인 마케팅 외에 다른 일까지 하다 보면 언젠간 만능 마케터가 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나를 달래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나에게 남았던 것은 '그러려고 이직했니?'라는 내 마음속에 차가운 냉소였다. 결국, 나는 한 달 간의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이직할 곳도 없었지만, 여기에 더 남아 있다가는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어린 시절 가장 싫어했던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남아 있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괜찮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갑자기 그만둔다 하니, 회사에서도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다. 입사해서 업무 적응도 잘 하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별안간 내가 그만둔다고 하니 그쪽 입장에서도 적잖히 당황한 것이다. 회사에서는 내 퇴사를 만류하고자 하는 눈치였지만, 이미 마음을 정했던 내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두 번째 회사를 내 발로 걸어 나왔다.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는 '내가 왜 회사를 그만뒀더라?'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눈물을 흘리고 난 다음에야 '아,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 뒀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카페에 앉아 있는 지금도 조금은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는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내가 설 자리를 또 못 찾으면 어쩌나 하고. 하지만, 내 마음만은 평온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달려가고 싶은 방향이 있으니 조금은 무섭고 겁이 나도 괜찮다. 그리고, 잃어버릴 뻔한 나를 다시 되찾았기에, 다시 시작할 용기도 생겼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받았던 그 위로를 바탕으로, 다시 올라가 보자. 어쨌거나 나는 아직 서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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