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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May 15. 2020

아이스 와인

때 이른 서리를 견뎌낸 포도알이 선사하는 궁극의 달콤함


이전 글에서 제 돈 주고 처음으로 마셔본 와인은 모스카토 다스티라고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제가 마셔본 최초의 와인은 아이스 와인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달달한 와인으로 입문하게 되었네요. 불어로는 vin de glace, 독일어로는 EisweIn이라고 하는 아이스 와인은 1700년대 후반에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포도를 수확하기도 전에 닥쳐버린 서리 때문에 포도가 전부 얼어버렸는데,  당시 와인 메이커가 고집을 부려서 얼어버린 포도를 평소처럼 수확하고 즙을 발효시켜 달콤한 맛이 나는 와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자료에서 보면 로마 시대에도 아이스 와인을 만들어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대의 아이스 와인이라기보다는 로마 시대 때 만들어 마시던 건포도 와인에 더 흡사하다고 해요. 기록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최초의 아이스 와인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1829년 빈티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스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수확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첫서리가 예년보다 빨리 와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까 19세기만 해도 아이스 와인이 생산된 해는 여섯 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초기의 자료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첫서리가 빨리 오고 포도가 벌써 얼어버린 해에, 마침 노동력이 확보되었을 때만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공압식 블레더(Pneumatic bladder)가 개발되고 나서 아이스 와인의 생산이 수월해졌으며, 생산량과 수요 역시 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난 후 각 기초 산업들이 정상화되었을 즈음인 1961년부터 아이스 와인 생산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공압식 블레더


아이스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독일과 캐나다이며, 생산량으로는 캐나다가 압도적이고 독일이 그 뒤를 잇습니다. 그 외 미국, 오스트리아나 프랑스 알자스, 일본에서도 생산한다고 합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품종은 역시 추위를 잘 견디는 리슬링이고, 게뷔르츠트라미너, 세이발 블랑, 샤도네이, 케르너, 슈냉 블랑, 피노 블랑, 에렌펠저 등의 화이트와, 메를로, 피노누아, 카베르네 소비뇽, 쉬라즈, 산지오베제, 세미용 등의 레드 아이스 와인용 품종이 있습니다.  


아이스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까요?

포도가 익기 시작하면,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 플라스틱 소재의 랩을 사용해 포도송이를 감싸줍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야생동물들이 잘 익은 포도를 먹어버리기 때문이지요. 포도가 일단 녹아버리면 포도를 감싼 얼음이 깨지면서 포도의 형태가 망가져 버리기 때문에, 수확은 늘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진행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이동식 발전기와 원격으로 온도를 읽어낼 수 있는 장치를 사용하면서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어요. 


밤에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 (출처: Wines of Canada)


보통 영하 6도에서 12도 사이에 아이스 와인을 만들 포도를 수확합니다. 포도알 속의 즙은 영하 7도에서 얼어버리는데, 캐나다에서는 영하 10도로 떨어지기를 기다려 수확을 한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영하 6도에서 수확을 시작해서, 온도를 확인한 후 12도 이하로 떨어지면 작업을 그만둡니다. 영하 12도에서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캐나다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첫서리를 기다려서 하는 수확이라서 포도가 이미 잘 익어 있는 상태인데, 포도가 너무 얼어도 품질에 좋지 않거든요


동이 틀 때쯤 수확을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 (출처: viticulturevignoble.fr)

아이스 와인 생산은 사실 위험부담이 꽤 큰 편입니다. 포도밭에서 아이스 와인을 만들 포도를 남겨두었다 해도, 어떤 때는 서리가 아예 오지 않는 해도 있어서 그렇게 남겨둔 포도를 모두 낭비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포도가 잘 익은 다음에는 노동력을 집중시켜 포도가 녹지 않도록 최소 시간 안에 포도송이를 따내야 하므로, 인건비도 비싸지요. 그리고 이렇게 수확한 포도는 짜낸 즙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와인을 만들 때와 대비하여 최종 생산량도 적어집니다. 그래서 용량에 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비싸게 팔리는 것 같아요. 


수확된 포도 (출처: beaux-vins.com)



다른 와인을 만들 때처럼 압착을 한 후, 해동이 시작되기 전에 재빨리 즙을 짜냅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포도즙 양이 매우 적어요. 그런 다음 두 달에서 석 달 정도 매우 천천히 저온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며 각종 아로마가 풍성하게 피어나죠. 이다음 오크통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합니다. 


아이스 와인은 보통 10도에서 12도에서 마시는 게 좋습니다. 아이스 와인이라고 너무 차갑게 해 두었다가 마시면 아로마가 깨어나질 않아요. 색상은 화이트의 경우 옅은 노란색에서 호박색을 띠는 짙은 노란 색조까지 다양하며. 레드 아이스 와인의 경우 피노누아처럼 옅은 레드이거나 로제처럼 핑크색을 띠는 편입니다. 잘 익은 포도즙의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루며 긴 피니시를 선사해주는 것이 특징으로, 보통 15년까지는 보관할 수 있지만, 보관할 수 있는 환경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구입한 즉시 드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단맛이 강하니까 도수가 높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보통 레드 와인보다 꽤 낮은 편이에요. 독일에서 생산되는 아이스 와인은 6도 정도로 매우 가벼운 것도 있고, 캐나다의 경우에는 조금 더 높다고 합니다. 


아이스 와인은 디저트로 많이 드시지만, 푸와그라나 맛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인 호크포르 같은 치즈와도 궁합이 좋아요. 그럼 이제 아는 만큼 더 맛있게 드셔 보시길. :)



레퍼런스:

https://www.lesgrappes.com/

https://www.woowine.com/news/article/le-vin-de-glace-un-vin-rare-et-precieux

https://avis-vin.lefigaro.fr/wine-box-par-my-vitibox/o113945-quest-ce-quun-vin-de-glace

https://www.vin-de-glace.com/

https://www.comptoirdesmillesimes.com

https://viticulturevignoble.fr/vin-de-glace-ice-win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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