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100% 유기농 와인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95%-98% 정도가 유기농이라고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와인을 만들고자 구입하는 포도나무 묘목이, 배송 전 단계에서 뿌리 부분에 화학처리를 반드시 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와 와인 묘목을 생산하는 사업이 모두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이며 특히 고품질 와인을 만들고자 프랑스에서 와인 묘목을 주문하는 나라도 많죠. 하지만 묘목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유기농 와인을 만들 생산자와 그렇지 않은 생산자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공통적으로 묘목을 생산합니다.
그렇다면 왜 배송 직전에 화학처리를 하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바로 Flavescence dorée라는 질병 때문입니다. (죄송해요 아무리 찾아도 한국어로는 안 나오네요) 포도나무 묘목이 이 질병에 걸리면, 나뭇잎이 노랗고 짙은 금색으로 변하고, 나무줄기도 까매지며 포도송이를 거의 만들지 못하게 되죠. 그렇다면 유기농 와인을 만들건대, 화학처리를 안 한 묘목을 달라고 해서 나중에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이 질병을 고치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 질병은 일단 걸리면 치료가 어렵습니다. 나무를 다 뽑아내야 하거든요. 그리고 심할 경우 나무를 심었던 땅의 품질도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100% 유기농 와인이다, 라는 말에는 사실은 어폐가 있습니다. 우리가 100ml당 10칼로리 미만인 것을 저칼로리라고 안 하고 제로칼로리라고 마케팅하듯이, 100% 유기농 와인도 그쯤에 속하겠죠. :) 유기농 와인의 특징이라면, 신맛이 조금 더 발달해 있으며, 전체적인 아로마의 조화가 조금 더 뛰어납니다. 잔을 흔들면 기분 좋은 꽃향기와 과일향이 나는데, 특히 꽃향기는 일반 와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은은하고 오래 남는 향이 기분 좋아요.
와인 제조 과정에서 신맛이 조금 더 발달했다는 건, 전체적인 아로마의 조율을 돕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최종 상품으로 나온 유기농 와인의 알코올 농도는 기존 와인보다는 조금 더 낮은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프랑스는 2003년에 정말 심각한 가뭄을 겪었는데, 그 해에 연세 지긋한 분들도 많이 돌아가셨을 정도였습니다. 와인 생산자들은, 직업병처럼, 2003년 빈티지의 최종 품질이 어떨지 우려가 컸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수확량은 엄청 줄었지만 포도의 품질은 매우 뛰어났다고 해요. le vin primeur(포도 수확 후 2달 이내에 파는 와인)의 품질도 압도적으로 뛰어나서, 일부 생산자들은 농담으로 2003년 빈티지는 무조건 와인 생산자 가족 멤버 수 당 오크통 하나씩은 남겨두어야 한다 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유기농 와인은 처음부터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어요. 사람들의 인식은 오히려 일부 화학처리를 안 하니까 와인을 오래 보관할 수 없을 것이고, 그 해 바로 마시거나 2년 이내에 마셔야 한다면 보졸레와 다를 바가 뭐냐 하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유기농 인증을 받았는데도 선입견이 두려워 인증을 일부러 붙이지 않고 판매하기도 했어요.
유기농 와인이 본격적으로 인정을 받고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것은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이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농법은 우주와 자연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하여, 음력을 세고, 달이나 행성의 움직임에 맞춰 포도나무를 관리하고, 물을 주고, 음악을 틀어주고, 노래를 불러 주고, (소프라노나 테러 가수가 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특수 천연 비료를 땅에 뿌리며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포도나무를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몇 차례 큰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메달을 받으면서,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및 유기농 와인을 더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죠. 유기농 와인은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 효모로 발효하여 만듭니다. 그리고 산화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이산화황 대신, 드라이아이스나 탄산가스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유기농 와인을 구입하셨다면, 와인을 따서 조금 놔둔 후 드시는 게 좋아요. 따자마자 바로 드시면 맛이 닫힌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유기농 와인으로 유명한 아뻴라시옹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나, 유기농 와인을 만든다고 굳이 주목받을 필요가 없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보르도나 부르고뉴 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아뻴라씨옹인 랑게독이나 라 루아르 지방에서 먼저 시작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있는 유기농 와인을 드시고 싶다는 분께 저는 보르도 유기농 와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château Pavie-Macquin의 Pavie-Macquin이죠. http://www.pavie-macquin.com
그리고, 나는 충분한 예산이 있다! 는 분께는, (기념일이라던가, 기분 내고 싶으신 날이라면) Clos Rougeard les Poyeux 2007 Saumur Champigny Famille Bouygues Bio를 추천합니다. 제가 마셔본 것 중에는 가장 뛰어난 유기농 와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라 루아르 지방 와인을 선호하지는 않는데, 정말 선입견을 깬 와인이었어요. la quintessence라는 말이 어울리는 와인이에요. https://20-vins-millesimes.fr/fr/rouge/clos-rougeard-les-poyeux-2007-saumur-champigny-famille-bouygues-bio-445.html
너무 예산이 있는 와인만 추천하면 그러니까 적당한 가격대의 와인도 소개할게요. (저는 아무래도 시음회를 다니니까, 제 돈 주고 못 사 마실 와인이 많기도 합니다) 아뻴라씨옹 지공다스의 Fontavin 도멘의 Combe Sauvage, 오항쥬에서 열린 와인 시음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딴 와인으로, 가격대가 10유로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http://www.fontavin.com/vins-gigondas-rouge-bio-combe-sauvage
그리고 화이트 하나 추천드리고 마무리할게요. 샤토너프 뒤 빠쁘의 유기농 와인 생산 탑 5안에 드는, Domaine Duseigneur의 까타리나 블랑입니다. 식전주로도 식사에 곁들이는 용도로도 잘 어울리는, 끌레레뜨 100% 단일 품종 와인이에요. https://www.domaineduseigneur.com/catarina-bl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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