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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May 08. 2019

샤토너프 뒤 빠쁘

교황의 와인

 

Châteauneuf-du-Pape. 교황의 와인인 건 다들 아시죠? 간단하게 아비뇽 유수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성직자들에게도 과세를 시작한다."라고 하고 나서 당시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갈등 및 충돌이 있었죠. 이에 필리프 4세는 삼부회를 소집하여 이를 관철시킵니다.


유명한 아니니 사건 이후 프랑스 출신으로 교황을 뽑았고 끌레망스 5세가 즉위, 당시 프로방스 백작의 영토이자 왕의 영지에서 가까웠던 아비뇽에 교황청을 지어 자리 잡게 되죠. 아비뇽에 자리 잡은 첫 교황인 끌레망스는 늘 이탈리아를 그리워하지만 당시에는 전쟁이 일어나 돌아가지 못해요.


이 끌레망스 5세는 Roquemaure에 가는 길에 늘 Châteauneuf-du-Pape에 들러 2주 정도 휴식을 취하는 습관이 있었는데요, 이때 이미 그는 와인 생산지로서 이 지역이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1308년에 끌레망스 5세의 지시로 와인 묘목을 심기도 했죠. 하지만 포도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그만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후임인 요한 22세가 이곳에 교황의 성을 새로 짓고, 포도나무를 본격적으로 더 많이 경작하게 하여 와인 생산이 시작되었어요. 그 이전에 Châteauneuf-du-Pape 사람들은 와인으로 먹고사는 게 아니었어요. 시멘트, 대리석 정도를 가공하는 정도였고 건축 및 상업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교황의 성이 세워진 이 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아비뇽 교황청이나 그 주변 성당에서의 행사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요. 


샤토너프 뒤 빠쁘는 1936년 5월 15일에 정식 아뻴라시옹으로 등록됩니다. 샤토너프 뒤 빠쁘 마을을 포함하여 오항쥬(Orange), 소르그(Sorgue), 베다리드(Bédarrides) 및 꾸르떼종(Courthézon)까지 총 320명 정도의 와인 생산자들이 3,200헥타르에서 와인을 생산하고요. 연간 생산량 십만 헥토리터(레드와인 93%, 화이트 7%)에 이릅니다. 


총 헥타르에 비해서 생산량이 적다? 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지역 특성상 연령이 높은 포도나무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연간 총 2,800시간 정도 햇볕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요, 1년 내내 평균 기온이 14도 정도 유지되는데 이는 와인의 바디감을 높이는데 기여합니다.


그르나슈(Grenache), 쉬라즈(Syrah), 무베드르(Mourvèdre), 생소(Cinsault), 쿠노 아즈(Counoise), 스페인이 원산지인데 교황 어번 5세가 들여온 품종), 테렛누아(Terret Noir), 뮤스카르댕(Muscardin), 바카레즈(Vaccarèse), 끌레레뜨(Clairette), 루산(Roussanne), 픽풀(Picpoul), 피카르뎅(Picardin), 부블랭크(Bourboulenc) 의 총 13가지 품종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보통 레드와인의 경우 그르나슈(Grenache)가 메인 품종으로 쓰입니다. 여기에 쉬라즈(Syrah)나 무베드르(Mourvèdre), 생소(Cinsault) 등을 섞고요. 제일 흔하게는 그르나슈+ 쉬라즈 + 무베드르 조합인 것 같아요. 화이트는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루산(Roussanne), 부불랭크(Bourboulenc), 끌레레뜨(Clairette) 등을 많이 사용합니다.


샤토너프 뒤 빠쁘 와인은 흔히 '겨울 와인' 이라고도 하는데요, 소스가 진하고 기름기 있는 음식과 잘 어울려서이기도 하고, 와인 자체를 바로 따서 먹기보다는 좀 두었다가 먹는 vin de garde라서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디감도 묵직하고, 색깔도 진한 편이고요. 최소 알코올 농도 12.5%이며 화이트의 경우에도 좀 묵직한 것들이 많습니다. 레드의 경우는 14.5-15도에 이르는 것도 많고 화이트 와인도 vin de garde 종류가 많은 편이에요. 단일 품종 와인도 있지만 교황이 있던 시절 화합을 의미하는 다품종 블렌딩 와인을 더 많이 만들던 전통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습니다. 아뻴라시옹 기준 의무사항으로 포도 수확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어야 하고요. 포도의 당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 수확을 조금 더 늦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균 포도나무 연령이 50세 이상인 생산자가 많아서, 포도밭 면적에 비하면 수확량도 적고, 와인으로 만들어지는 양도 적은 편이죠. 보통 포도나무는 심은지 2년 이내 포도송이를 맺는데, 샤토너프 지역의 경우에는 보통 4-5년은 되어야 아뻴라시옹 승인이 가능한 와인에 사용할 수 있고요. 보통 생산지에서는 10년 이상된 것을 선호합니다.


포도나무는 덩굴류라서 놔두면 계속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는 있지만, 보통 50년 이상부터 연령대가 높은 나무로 취급하고 관리 기준이 달라집니다. 그만큼 유지하기가 까다롭고 수작업으로 관리를 해야 하죠. 샤토너프 지역 내에서 마셔본 것 중 가장 오래된 나무에서 나온 것은 105년이었고,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130년 된 것이었는데 두 번 모두 생산자들이 입을 모아 오래된 포도나무는 정말 관리하기가 까다롭다고 성토했습니다. 하지만 늙은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특유의 포도 맛이 있어서, 꾸준한 수요가 있죠. 사람 입에 맛있듯이, 야생동물들도 신기하게 늙은 나무의 포도알을 많이 따먹는다고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와인을 만들지 않는, 샤토너프 뒤 빠쁘의 120년 된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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