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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Aug 01. 2019

쥐라 와인

유산균 하면 떠오르는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고향

쥐라(Jura)는 부르고뉴와 스위스 사이에 위치한 동프랑스 지역의 와인 생산지입니다. 대륙성 기후라서 겨울은 길고 추우며 여름은 덥지만, 부르고뉴보다는 비가 훨씬 더 많이 오는 곳이죠. 부르고뉴와는 약 1시간 정도 떨어져 있지만, 분위기가 정말 다른 곳입니다. 부르고뉴보다는 덜 흐리고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들과 산도 더 푸르고, 당연히 그 풀들을 뜯어 먹고 자라는 소들에서 짜낸 건강한 우유로 맛있는 치즈를 생산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현재 약 2천 헥타르 정도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어 프랑스 와인 생산지 중에서는 소규모에 속하는 편이에요. 다른 프랑스 지역과 마찬가지로 필록세라 이전에는 지금의 10배 이상인 2만 헥타르 정도의 포도밭이 있었다고 합니다. 쥐라의 토양은 진흙이 적당히 섞인 석회질 토양과 화강암이 섞여 있어 다양한 품종을 심기 좋아요. 이 지역에서는 봄에 서리가 내릴 때를 대비해서 포도나무 줄기가 조금 더 위쪽으로 타고 올라가도록 버팀목을 높게 잡아줍니다. 타 지역에 비해서 포도 수확이 느리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편이라 (11월 초에 수확하는 경우도 있음) 포도밭 관리가 조금 더 까다로운 편이에요.


쥐라 와인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뱅 죤느(vin jaune, yellow wine)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뱅 죤느를 만드는 아뻴라시옹은 꼬뜨 뒤 주라(Côtes du Jura), 아흐부아(Arbois), 레뚜알(L'Etoile) 및 샤토 샬롱(Château-Chalon)이며, 100% 사바냥(savagnin)으로 만들어집니다. 보통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수확합니다. 이 품종은 비교적 알이 작고, 껍질이 두꺼워 곰팡이나 질병 등 외부 환경에 잘 견디는 편입니다. 아로마가 무척 풍부하고 당도가 높아 이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면 알코올 농도가 높은 편이며, 보관만 잘하면 100년도 더 넘게 그 맛이 유지된다고 해요. 서서히 발효시킨 후 228ℓ의 오래된 오크통에 옮겨져 6년 3개월 동안의 숙성을 거쳐야 완성됩니다. 

위의 사진처럼 살아 있는 효모 막이 생겨 숙성기간 동안 산화로부터 자연스럽게 와인을 보호해주며 독특하고 복합적인 맛의 와인이 탄생합니다. 셰리 와인을 만드는 방식과도 유사하지요. 이렇게 긴 기다림이 끝나고, 처음 와인 용량 대비 62% 정도가 남으면 비로소 뱅 죤느로 인정받습니다. 특히, 일반 와인(0.75ℓ)과는 다르게 끌라블랭이라고 하는 0.62ℓ의 병에 담겨 판매됩니다. 일단 병입 된 와인은 최소 50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긴 숙성 기간을 거쳤으니 구입 후 바로 마셔도 소위 말하는 '이제 마셔도 되는 와인'이긴 하죠.


숙성기간이 길다 보니, 원하는 와인이 아니라 마치 발사믹 식초 같은 맛이 나서 애써 만든 와인을 모두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중간에 와인 맛을 테스트해 본 후, 원하는 뱅 죤느 스타일 와인이 아닌 경우 바로 병입 해서 꼬뜨 뒤 주라 트라디숑(Côtes du Jura Tradition)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합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뱅 죤느에 비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숙성 기간은 훨씬 짧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와인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뱅 죤느를 맛보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다 싶은 분들은 이 와인을 먼저 맛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뱅 죤느 생산 아뻴라시옹 중에서도, 샤토 살롱이 가장 유명합니다. 과거 나폴레옹 3세가 이 지역의 뱅 죤느를 마시고 "세계 최고의 와인이다"라고 극찬한 적도 있었죠. 총 40헥타르 정도의 포도밭에서 까다로운 품질 공정을 거쳐 뱅 죤느를 만드는데, 기후나 특이사항 등으로 인해 포도의 맛이 예년 같지 않으면 양조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뱅 죤느 와인을 고르실 때 샤토 살롱이라고 쓰여 있다면 믿고 드셔도 좋을 것 같아요. 


뱅 죤느의 맛은 일반적인 와인과는 굉장히 다른데요. 견과류 맛과 향이 나는 것도 같고, 짠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달콤한 향신료가 들어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페어링을 할 때도 생강이 들어간 음식과 매치하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크림소스나 치즈가 많이 들어간 닭이나 칠면조 요리나 치즈 퐁듀와 곁들이기도 좋고, 각종 향신료 아로마가 풍부해 카레 소스가 들어간 요리와도 잘 어울려요. 그리고 꿀에 절인 과일 디저트나 조금 의외이지만 떡 하고도 궁합이 좋습니다. 가능한 한 드시기 몇 시간 전에 오픈하시는 게 좋고, 디캔팅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뱅드 빠이유(vin de paille)는 가장 잘 익은 샤도네이나 사바냥 혹은 풀사르를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실내에 걸어 두거나 짚 위에서 말린 후, 충분히 포도알에 당분이 농축되도록 3개월 정도 기다렸다가 크리스마스 전에 압착합니다. 주조통 안에서 3~4년 이상 숙성시켜 보통 40~50g 정도의 천연 당분을 함유한 와인이 완성됩니다. 수확량은 한정되어 있고 손이 많이 가서 매우 귀한 와인이죠. 피예뜨라고 하는 0.5ℓ 의 병에 담겨 판매됩니다. 색상이 매우 짙고, 호두나 건포도 아로마가 강하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소제목에서 말했듯 쥐라 파스퇴르의 고향이기도 한데요. 파스퇴르라는 발효 전문 과학자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와인의 품질을 좌우하는 건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등장은 와인 생산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파스퇴르가 소유했던 포도밭은 아르부아(Arbois)라는 지역에 있으며, 현재는 앙리 메흐(Henri Maire)에서 파스퇴르의 포도밭을 인수하고 더 확장하여 와인을 판매합니다. 가끔 옥션에서 1945년 빈티지의 와인이 300~400유로대에 팔리기도 하더라고요. 


다른 와인 생산지에 비해 쥐라 와인은 확실히 캐릭터가 강하고, 호불호도 많이 나뉘는 편이에요. 구입하지 않고도 시음할 기회가 있다면 마음을 열고 드셔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포도 품종 본연의 맛보다는 늦은 수확 시기, 긴 숙성 기간 (뱅 죤느)이나 독특한 생산방식 (뱅 드 빠이유) 덕분에 떼루아르의 특성을 더 잘 살려낸 와인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좋은 와인과 나쁜 와인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입에 맞는 와인과 아닌 와인이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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