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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May 06. 2020

조지아 와인

와인 양조 역사 8천 년을 자랑하는 나라

저는 지난 12월에 조지아 출장을 다녀왔는데요. 겨울이라는 날씨가 무색하게 햇살도 포근하고 좋아 패딩은 거의 팔에 걸치고 다녔습니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조지아는 워낙 땅이 비옥해서 뭘 심어도 잘 자란다고 하더라고요.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나라 이름인 조지아는 동유럽과 서아시아 대륙 사이, 흑해와 코카서스 산맥에 걸쳐져 있으며, 한때는 그루지야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소비에트 연합에 속했던 때에는 러시아어식 발음대로 해서 그루지야라고 했던 것인데, 독립된 이후 꾸준히 사이가 나빴던지라 2004년부터 서서히 영어식 발음인 조지아로 국가명 개명 요청을 하기 시작했어요. 한국 정부는 2011년부터 그루지야 대신 조지아라고 외래어 표기를 정정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 많으신 분들은 아직도 가끔 그루지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참고로 북한이나 기타 동유럽 국가에서는 여전히 그루지야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폴란드 친구 말에 따르면 다들 러시아어식 발음이 익숙해서 그게 편하대요. 


실제로 조지아에 가보면 분위기는 유럽 같고, 날씨는 동유럽이라고 하기에는 따뜻한 편입니다. 물론 러시아만 해도 워낙 땅덩어리가 크니까 몹시 추운 곳이 있고 상대적으로 온난한 곳이 있듯이, 조지아도 해안가로 갈수록 더 따뜻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수도인 트빌리시와 수도에서 2시간 이내에 위치한 와이너리 등을 다녀왔는데, 한국과 비교하자면 쌀쌀한 늦가을 정도의 날씨였습니다. 다만 일교차는 컸어요. 아침과 저녁에는 유난히 싸늘했고 특히 저녁에는 다들 벽난로 앞에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모습. (이미지 출처: https://www.europeanbestdestinations.com)


조지아는 다양한 종류의 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입니다. 지난 브런치 글에서 잠시 소개했었던 것처럼, 와인 양조를 했다는 증거 자료로 보면 8천 년이나 된 가장 오래된 자료를 가진 나라이지요. 그런데 다른 와인 생산국인 프랑스나 이탈리아 대비 같은 유럽임에도 덜 알려졌던 이유는, 러시아에 속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동유럽 친구들 말에 따르면 동유럽 사람들끼리는 조지아 와인이 워낙 유명했고, 조지아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상당량이 러시아에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러시아와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러시아에 수출하는 와인을 줄였는데, 이에 러시아 사람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하네요. 심지어 아르메니아나 아제르바이잔에 수출되는 와인을 싣고 조지아 국경을 떠난 차량이 갑자기 분실되어서는 한참 뒤에 러시아 국경 접점 지대에서 빈 차량으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와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조지아 와인의 가장 특출 나는 점이라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한 전통 크베브리(Qvevri) 와인 양조 방식이 되겠습니다. 크베브리는 와인을 저장하고 숙성하기 위해 조지아에서 사용하는 달걀 모양의 항아리인데요. 수확한 포도를 압착기에서 짜고 나서, 이 항아리에 포도 및 포도 줄기, 껍질 및 씨앗까지 모두 넣고 밀봉한 다음 땅속에서 숙성시키는 방식입니다. 조지아에서의 와인 양조는 단순 상업적 용도가 아니라 종교적 행사이며 일상이기도 합니다. 조지아 교회에서는 포도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보고 있으며,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포도나무 가지로 만든 십자가에 성유를 찍어 세례를 받았다고 해요. 그리고 각 가정에서 보유한 와인 저장실 역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나 손님이 왔을 때 크베브리가 묻혀 있는 와인 저장실을 보여주며 귀한 와인을 대접했다고 해요.


크베브리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들이 있는데, 수백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지식을 활용해 크베브리에 적합한 점토를 골라 빚어냅니다. 점토의 종류에 따라 크베브리가 와인에 더해주는 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지에서 만났던 분들에 따르면 크베브리 제작 노하우는 구전되어 왔다고 해요. 정확하게 체계적으로 문서로 만들어지지는 않아서, 가족 대대로 헤리티지가 이어지는 거죠. 


크베브리 제작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제작으로 완성한 적갈색 테라코타 항아리를 구워낸 다음, 내부는 밀랍으로 코팅됩니다. 와인이 가득 찼을 때 혹시 무게 때문에 깨지지 않도록 외부는 와이어 골조로 감아준 후, 다시 시멘트나 모래를 섞은 석회 가루를 발라 한층 더 견고하게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크베브리는 굳이 상업적으로 병입을 할 일이 없이, 집에서 가족들끼리 나눠 마시는 용도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고려해 다양한 사이즈로 만들어져요.

한 번 구워지고 나서 식고 있는 크베브리들 (출처: 유네스코) 


크베브리가 묻혀 있는 와인 저장실 (출처: 유네스코)

그리고 크베브리를 세척하는 데에도 전문 지식이 필요한데, 이 역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장인들이 도맡아왔습니다. 하지만 와인 업계가 전 세계적으로 상업화되면서 조지아에서도 다른 와인 생산국처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및 오크통 숙성을 많이 하는 바람에, 크베브리 제작 및 세척 노하우에 드는 품과 비용을 줄이고자 양조 방식을 바꾼 와이너리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현재는 조지아 전체에서 생산된 와인의 3%만이 전통 크베브리 숙성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인의 고집스러운 열정을 존중하는 와이너리들은 여전히 전통 방식 그대로 와인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혹시 조지아에 가신다면 크베브리 숙성으로 완성된 와인을 꼭 드셔 보세요. 

체리나무 가지로 크베브리 내부를 세척하는 모습 (출처: 유네스코)


조지아 와인 메이커들이 크베브리 사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땅의 신비한 힘을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지아에서 만난 와인 메이커분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었어요. "일단 땅에 묻은 크베브리에 와인을 붓고 나면, 그 나머지는 땅의 여신과 하느님의 소관입니다."


실제로 조지아에서 아직도 사용하는 크베브리. 세척 과정을 마치고 말려두는 중. 개인 출장 중 찍은 사진 (1)
더 가까이서 찍은 사진. 크베브리를 말리는 중에 저렇게 마른 포도가지를 넣어두기도 합니다. 개인 출장 중 찍은 사진 (2) 


크베브리를 사용할 때는 이렇게 땅에 묻고, 뚜껑은 투명한 걸 사용합니다. 개인 출장 중 찍은 사진 (3)


수확한 포도를 짓이기고 압착할 때 사용하는, 전통 목재 기구. 개인 출장 중 찍은 사진 (4)

전통 조지아 와인은 포도 이파리 및 줄기까지 같이 쓰는 걸로 잘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와인 양조 스타일에 따라서 껍질 등 기타 식물성 성분을 배제하기도 합니다. 저렇게 땅에 묻은 크베브리에 포도액을 붓고 나면 위 사진처럼 보이는 투명한 파이프로 수돗물을 넣어서 발효에 알맞은 온도 조절을 할 뿐, 어떤 화학성분이나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덮개가 있는 사진의 왼쪽에서 보이는 덮개로 덮어 어둡게 한 후, 완성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해요. 그렇다면 "와인 양조는 어떻게 하시나요?"라고 질문했더니, 


"테라코타가 구워지는 동안 크기가 서로 다른 알갱이들이 만드는 공기구멍 덕분에 크베브리는 자연스럽게 숨 쉬는 용기가 되죠. 포도주를 발효시키는 데 필요한 박테리아는 바람이 불면 자연스럽게 같이 날아오는데, 이 구멍을 통해 미세한 공기와 함께 포도주에 필요한 박테리아가 내부로 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크베브리 뚜껑 역할을 하는 저 투명 유리와 크베브리 사이는 송진으로 메워서 접착시킵니다. 친환경적인 방식이죠. 양조에 필요한 만큼의 습도는 땅이 다 해결해줍니다. 날씨 좋기로 유명한 조지아 특유의 햇빛도 온도조절에 한몫합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와인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는 겁니다. 내가 하는 건 없어요. 그저 지켜보는 역할만 하죠."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덧붙여, "Wine is born, not made." 


레퍼런스:

Le Vin pour Tous, written by Myriam Huet

Tasting Georgia: A Food and Wine Journey in the Caucasus, written by Carla Capalbo 

https://ich.unesco.org/en/RL/ancient-georgian-traditional-qvevri-wine-making-method-00870   

https://georgiaabout.com 

https://www.standard.co.uk/lifestyle/travel/tbilisi-georgia-city-guide-wine-lovers-a3669716.html                                                                                                                

https://www.europeanbestdestinations.com/destinations/tbilisi/ 

https://www.wine-business-internatio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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