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레드, 화이트, 핑크빛 말고도 다른 색깔이 있다는 걸 아셨나요?
와인만큼 다양한 색깔이 있는 술도 없는 것 같아요. 보통은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이렇게 알고 계실 텐데, 오렌지 와인도 있고 블루 와인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이번에는 와인의 색깔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게요.
먼저, 레드 와인은 왜 붉은 색깔일까요? 적포도를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 때, 침용 과정에서 포도껍질을 포도액과 오랫동안 섞어 주면 포도껍질 속에 포함된 안토시아닌이라는 수용성 색소에서 붉은색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청포도로는 레드 와인을 만들 수 없겠죠? 하지만 적포도로는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데, 껍질을 벗겨서 알맹이만 사용하거나, 껍질과 알맹이를 함께 으깨지 않고 압착기로 눌러주면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샴페인도 사실상 색깔만 보면 화이트 와인이지만, 적포도인 피노 누아나 피노 뫼니에 껍질을 벗겨 알맹이만 사용하는 거지요.
그렇다면 로제는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요? 화이트와 레드를 섞는 것일까요? 저도 와인을 공부하기 전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로제는 레드 와인처럼 적포도를 사용하되 껍질의 색소가 많이 우러나오지 않도록 아주 약하게 즙을 우려내거나 침용 과정을 엄청 짧게 거쳐서 핑크빛 색상을 얻어냅니다. 아주 옅은 핑크색을 띠는 프로방스 로제의 경우 최대 24시간 이내의 침용 과정을 거치며, 짙은 색상의 로제로 잘 알려져 있는 따벨 로제의 경우에는 침용 및 발효가 진행 중인 적포도액에서 적포도즙만을 일부 빼내어 발효시킨 후 다시 포도액에 섞는 세녜(Saignée) 방식을 사용합니다. 실제로 Saignée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사혈이라는 뜻도 있는데, 옛날 치료를 목적으로 피를 뽑던 것을 의미하지요. 물론 매우 저가의 로제 와인은 상품으로 통과하지 못한 화이트와 레드를 섞어서 만들기도 한다고 하는데, 일단 프랑스를 기준으로 보면 화이트와 레드를 섞은 것으로는 로제를 만들고 판매할 수 없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는 이미 다 아는 얘기셨을까요? 그럼 이제 블루 와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최초의 블루 와인은 2016년에 Gïk Vin이라고 하는 스페인 회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블루빛 와인을 만들어야겠다는 영감은 블루 오션 전략에서 얻은 것이라고 해요. 저는 와인학교에 재학 중일 때 교수님 덕분에 마셔본 적이 있는데, 부드럽고 살짝 단맛이 도는 편이라 식전주로도 좋고, 블루빛인 걸 활용하여 칵테일로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유럽연합에서 블루 와인은 와인으로 여겨지지 않아 와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판매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유럽연합 내에서는 와인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고 일반 양조주로 판매를 했고, 중국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그러던 중 2018년 Vindigo라고 하는 남프랑스의 생산업체에서 블루 와인을 선보이며, 남프랑스 및 코르시카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중해의 블루 와인이라는 슬로건을 걸기도 했죠. 어떤 품종으로 블루 와인을 만들었는지 딱히 밝히지는 않았던 Gïk Vin과는 달리, Vindigo에서는 샤도네이를 사용해 블루 와인을 만든다고 공개했습니다. 샤도네이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중에, 적포도 껍질에 함유된 안토시아닌 색소를 섞어서 침용을 해주면 파란색을 띠게 된다고 해요.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그럼 지금까지 적포도로 와인을 만들었을 때는 왜 파란색이 아니라 붉은색이 되는 걸까요? 비밀은 PH인데요. PH는 와인의 산도를 측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1부터 14까지 있습니다. 보통 레드 와인의 PH는 3에서 4인데, 특별히 고안된 기술을 적용하여 이 PH를 7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파란색을 띠게 된다고 해요. 하지만, 와인 양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대부분 회의적인 견해를 유지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포도액의 PH가 4를 초과하게 되면 불필요한 미생물이 번식하기 쉽고, 와인의 산화도 엄청나게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블루 와인을 구해서 마셔보고는 실험실에 보내서 성분 분석을 요청하는 애호가들도 꽤 있었다고 해요. Gïk Vin 뿐 아니라 Vindigo 등 그 외 블루 와인을 생산하는 후발주자들도 이 파란 색깔은 천연 색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만든 사람만이 알고 있겠죠? 이런 논란 때문이었는지, 블루 와인을 찾는 소비자의 문의가 빗발쳤음에도 불구하고 Vindigo와 함께 블루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프랑스 와인 생산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블루 와인이 탄생한 곳인 스페인으로 거처를 옮겨서 Gïk Vin보다 더 나은 소비자 반응을 이끌어 냅니다. 맛도 훨씬 더 좋더라고 하는 후문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오렌지 와인은 무엇일까요? 오렌지로 만든 와인일까요? 일단 프랑스어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음료는 포도를 가지고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아쉽게도 오렌지로 만들었다면 와인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오렌지 와인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긴 침용 과정을 거친 내추럴 와인 방식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입니다. 와인 양조 과정에서 침용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포도의 껍질과 알맹이 씨앗을 같이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는 보통 침용을 하지 않지요. 하지만 오렌지 와인은 씨앗과 껍질까지 모두 함께 넣어서 침용을 거쳐서 매우 짙은 색상을 띠는 화이트 와인이 됩니다. 가볍고 편하게 마실 와인을 찾으시는 분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오렌지 와인을 추천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껍질과 씨앗을 함께 사용해서 오래 침용하다 보니 매우 탄닌이 높고 바디감도 강한 와인이거든요. 오렌지 와인 생산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호박색이나 오렌지색 혹은 옅은 갈색을 띠기도 하며, 오렌지 와인이라는 단어 자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2004년 David A. Harvey라는 영국인입니다. 와인 수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보니 마케팅 목적으로 만든 단어이며 효과는 즉각적이라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고 합니다. 확실히 침용이 긴 화이트 와인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더 기억하기 쉽긴 하죠? 오렌지 와인은 조지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크베브리를 사용해서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조지아뿐 아니라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프랑스 및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레퍼런스:
https://en.wikipedia.org/wiki/Orange_wine
http://clubamphoresbourges.blogspot.com/2019/01/vin-bleu-venu-despagne-et-de-corse.html
https://blog.coravin.com/2015/09/28/wine-of-the-week-orange-w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