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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Nov 30. 2021

레스토랑에서 와인 주문 시 첫 잔을 따라주는 이유

꼭 필요한 과정인가 리추얼인가

유럽 여행을 가셨을 때나 영화 등 매체에서 보셨을 법한 장면일 거예요. 레스토랑에서 식사에 곁들일 와인을 병으로 주문하면 서버가 와서 와인을 소개해줍니다. 주문하신 와인에 대한 설명을 하죠. 지역, 품종, 아펠라시옹, 생산자나 샤토 이름 등을 설명하고 빈티지도 알려줍니다. 그리고 "드셔 보시겠어요?" 하고 제안을 합니다. 이때 으레 해당 와인을 고른/주문한 사람이 테이스팅을 하는데요. 직원이 와인을 오픈한 후 코르크 상태를 확인하고 테이블에 올려둡니다. 와인을 잔에 조금 따라 주면, 주문한 사람이 맛을 보고 판단을 하죠. 이때 온도가 적합하다던지, 디캔팅이 필요하다거나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린 후 마시는 게 좋겠다던지 추가 코멘트가 있으면 반영됩니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좋다고 하면 와인을 맛본 사람의 오른쪽 방향으로 와인을 서빙합니다. 특정 나라의 경우 여자 손님 먼저 서빙한다는 것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때 손으로 와인 라벨을 가리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레드와인의 경우는 잔의 절반 정도, 화이트 와인의 경우는 잔의 1/3을 채우는 것이 정석입니다. 서버의 역할은 보통 첫 잔에서 끝나지만, 한 테이블에서 여러 병의 와인을 주문하는 경우에는 같은 순서로 반복됩니다.


이렇게 주문한 와인을 시음하게 해 주는 것은 와인이 마음에 안 들면 바꿔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와인의 맛이 정상인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와인이 부쇼네 된 경우에는 보통 와인을 오픈하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때문에 굳이 마셔볼 필요가 없죠. 그 외에 와인이 크게 상하거나 변질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일 겁니다. 부쇼네만 해도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신대륙 와인들은 코르크가 아니라 스크루 마개도 많이 사용하는데, 스크루 마개가 있는 와인도 오픈하고 나서 주문한 사람이 시음해 보도록 하거든요. 그러면 굳이 부쇼네 때문은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 이건 그저 과거의 습관인 걸까요? 옛날에는 와인의 보관 상태가 조금 들쭉날쭉했기에, 이런 검증이 꼭 필요했던 것일까요?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부쇼네 현상이 있다고 구입처에 연락하면 교환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판매처에서는 와이너리에 연락해 부쇼네 된 와인을 새 와인으로 교환해주었다고 말하면, 와이너리에서 보상 처리를 해주는 거죠. 그렇다면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바로 시음을 하게 해주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까요?


저는 와인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이게 단순히 과거의 와인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습관은 아니라는 흥미로운 이론을 교수님한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와인이 워낙 오랜 역사를 가진 술이다 보니, 과거 부족 사회를 일구어 살던 시절에도 와인은 여러 행사에 쓰이는 음료였죠. 이때 행사와 술을 준비한 측에서 "이 와인에는 독이 없다."라는 걸 초대받은 부족에게 보여주고 안심시키는 의미에서 첫 잔을 시음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술로 독살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레스토랑에서 손님 초대를 할 때나 집에 손님맞이를 할 때 적어도 술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픈한 후, 술을 따라주는 사람과 술을 맛보는 사람이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다음 모두가 안심하고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이렇게 미신인 듯 리추얼인 듯한 얘기를 하나 더 해보자면, 프랑스에서는 마지막 잔의 와인이 가장 맛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 근거 있는 말이기는 해요. 와인을 오픈한 후에 식사와 곁들여 마시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와의 접촉으로 와인 맛도  많이 열리고, 아로마도  많이 깨어나니까요. 그리고 기분 상으로도 충분히 그렇게 느낄  있죠. 맛있는 식사에 곁들여 와인을 마시며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조금  알아가게 되는 즐거운 시간이었을 테고, 적당한 알코올 기운에 긴장도  풀렸을 테니까요.


와인을 공부한 지 좀 된 사람들은, 꼭 마셔봐야 하는 버킷 리스트만큼이나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마시고 싶은 와인을 정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아마 바뀔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샤토 이켐 1945년 빈티지일 거 같아요. 물론 그전에 구하는 것이 더 힘들겠죠?


레퍼런스: http://www.lafdv.fr/std/926-pourquoi-le-dernier-verre-de-vin-est-toujours-le-meill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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