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를 살필 때가 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맡지 않으려고 할 때나 가고 싶지 않은 곳을 피하려고 할 때가 그렇다. 원하지 않은 상황으로 들어가지 않고 싶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상황을 살피며 머리를 굴린다. 어느 쪽이 더 나을지 판단하려는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돌아가는 상황을 조합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그 결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면, 스스로 판단을 칭찬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탄하고 자책한다. 애꿎은 사람에게 그 원망을 돌리기도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말이다.
어떤 공동체든 이런 사람은 꼭 있다.
모두 함께 무언가를 할 때, 조금이라도 쉽고 편안한 일을 하려고 한다. 함께 나눠서 져야 하는 짐이 있을 때, 가장 작고 손쉬운 것을 찾는다. 어떤 드라마인지 기억나진 않는데, 이런 상황이 연출됐었다. 다른 사람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앞에 있는 것을 하나씩 들고 이동했다. 딱 봐도 꾀부리게 생긴 남자는 고개를 빼꼼히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목표물을 발견한 남자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 상자 앞으로 갔다. 상자를 두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리는데, 웬걸. 엄청 힘겹게 들어 올렸다. 상자 크기만 작을 뿐,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매우 무게가 나갔던 거다. 남자는 맨 뒤에서 낑낑대며 그 상자를 들고 이동했다. 사람들은 그 남자를 돌아보며 쌤통이라는 표정과 함께 끽끽 대며 서둘러 갔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다.
눈치를 살피지 않고 앞에 있는 상자를 들었으면, 다른 사람과 다름없이 이동했을 텐데 말이다. 군대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대민 지원 갔을 때였다. 몇 군데 지원을 나가야 했고 각각 인원이 필요했다. 선임들은 어디가 편할지를 따져서 그곳에 자신들을 먼저 배정했다. 후임들은 선임들이 볼 때, 힘들고 고생 좀 할 것 같은 곳으로 배정됐다. 선임과 후임이 너무 많이 갈린 것을 본 선임하사가 눈치를 채고, 몇몇을 바꿨다. 바뀐 선임들은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자리를 바꿨고, 이를 지켜본 다른 선임들은 골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후임에 속했었는데, 자리는 바뀌지 않았다.
대민 지원을 마치고 복귀했는데 어땠을까?
고생 좀 할 것 같은 곳에 간 사람들과 좀 편한 것 같은 곳을 간 사람들의 표정 말이다.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이 되어 만났다. 고생 좀 할 것 같은 곳에서는 생각보다 일의 양이 많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그곳 주인 어르신의 마음이 너무 좋았다. 고생하는 군인들 좀 쉬게 해주고 싶다며, 일은 적게 시키고 좋은 음식으로 대접해 주었다. 편할 것 같다며 좋다고 간 사람들은 어땠을까? 본래 해야 할 일은 물론, 생각지도 못한 일까지 했다고 한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음식도 시원찮았던 모양이었다. 오만상을 쓰고 있었는데, 우리 소식을 듣더니 방방 뛰기 시작했다. 애꿎은 우리 후임들만 갈굼을 당했다. 자기들이 보내놓고는 말이다.
눈치를 살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힘들고 고생하는 일을 피하려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을 맡게 된다. 피하려고 했던 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것을 떠안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쌤통”이라고 말한다. 꾀부리다가 자기 꾀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고, 고소하다고 표현하는 거다. 꾀부리면 눈치를 살피게 되고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것이 세상 이치인듯하다. 다른 사람보다 더 힘쓰고 더 일하고 더 애쓰려고 할 때, 오히려 더 좋은 몫을 얻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혜택을 얻게 되는 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타인을 위해, 한 걸음만 더 내딛는 마음을 내어놓는 게 필요하다. 그것이 삶을 살아내는 지혜가 아닐지 싶다. 더 좋은 몫을 얻기 위한 삶의 지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