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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잃은 행동이 덧없어지는 이유

by 청리성 김작가

표정과 행동이 어색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 보고 있다고 의식할 때다. 행사가 있을 때, 카메라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신경이 쓰인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잘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표정과 동작을 의식해서 표현한다. 더 밝게 웃고 동작을 더 크게 한다. 봉사할 때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가도, 누군가 사진을 찍는 것을 보거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쓰니, 스스로 어색함을 느끼는 거다. 보일 모습에 신경이 쓰이는 건, 더 잘 보이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하던 그대로 하면 되는데, 그러질 못한다. 마음에 힘이 들어가니, 행동이 과해지고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본질을 잃기 때문이다.

본질은 본래 하려던 속성을 말한다. 행사에 참여했다면, 행사에 참여한 이유와 의도대로 행동하는 것이 본질에 충실한 모습이다. 행사 그 자체에 집중하는 거다. 봉사할 때는 자기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면 그것을 하면 되고, 짐을 나르는 일이라면 또 그렇게 하면 된다. 그 자체 그러니까 본질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럴 여력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야구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인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집중해야 할 건,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예측하고 그것을 어떻게 공략할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스윙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투수가 던지는 공의 상황에 맞춰서 공략해야 한다. 주자가 있다면 공을 보내야 할 위치도 따져봐야 한다. 팀배팅이라는 걸 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끔, 평소와 다른 스윙을 하는 선수를 볼 때가 있다. 과도한 스윙이랄까? 자기 스윙에 못 이겨 넘어지는 모습도 본다. 큰 거 한 방을 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책임감 때문일 수도 욕심 때문일 수도 있는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타자의 본질을 잃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본질을 잃는다는 건, 전부를 잃는다는 말과 같다.

한순간에 잃진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잃게 되고 결국, 전부 잃게 된다. 두 개의 선이 일치하고 있다가 조금만 틀어지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그 틈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계속 이어갈수록 틈이 벌어지고 나중에는 만날 수 없는 거리까지 벌어지게 된다. 처음은 별거 아닌 차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차이가 된다. 아니, 전혀 다른 선이 된다. 본질을 잃는다는 건 이런 거다. 처음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도 알 수 없는 차이로 벌어지다가, 어느새 전혀 다른 길로 가는 거다.


선행도 그렇지 않은가.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을 위로하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모든 행동이 선행이다. 타인이 중심이 되고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본질이다. 자기가 한 행동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전자의 마음보다 후자의 모습에 더 신경을 쓴다면, 그건 선행이 아닌 자기 자랑일 수밖에 없다. 자기 자랑의 도가 지나치면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결과밖에는 내지 못한다. 본질을 잃은 모습이 이렇다.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계속 마음 쓰고 살펴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나아가기만 한다면, 벌어진 선처럼, 본질과 마냥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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