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탄력성>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며칠 전 첫째로부터 소개(?)받아, 구독하는 <밀리의 서재>에서 보고 있다. 책은 종이책뿐이라고 여기던 내가 전자책을 보게 된 거다. 며칠 보면서 느낀 것은, 전자책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잠깐이라도 볼 수 있다. 종이책은 부피에 따라 다르긴 해도, 가방에서 꺼내야 하고 펼쳐야 한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면 ‘나중에 보지 뭐!’하고 읽기를 포기한다. 전자책은 다르다. 핸드폰만 켜면 되니, 1분도 안 되는 시간이라도 펼치게 된다. 자투리 중 자투리 시간까지 활용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언제 어느 때라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책 읽을 시간이 돼도 책을 가져오지 않으면 볼 수 없다. 항상 챙겨 다닌다지만,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었다. 시간은 있지만, 책이 없어 아쉬웠던 적이 더러 있었다. 전자책은 어떤가? 핸드폰을 두고 오지 않은 이상,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장점을 찾고자 하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무턱대고 단정 지으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얻지 못한다. 지금까지 그랬던 시간이 아쉽다.
‘회복 탄력성’이 무엇일까?
임의로 풀어보면 이렇다. ‘회복’은, 원래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다. 아픈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할 때. “얼른 회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하는 그 회복이다. ‘탄력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무밴드가 떠 오른다. 길게 늘였다가 놓았을 때 본래 상태로 돌아오는 힘, 튕기는 모습을 보고, 탄력성이 좋다고 말한다. 이 두 단어 안에 들어있는 공통분모는 이렇다. ‘되돌아오다.’ 어디로 되돌아오는 걸까?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온다는 말이다. 본래의 상태는, 온전한 상태를 말한다. 온전한 상태가 사람 본래의 상태라는 말이다.
“회복 탄력성은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 낸 상태를 말한다. 떨어져 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추락해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오를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의 비밀이다.” <회복 탄력성>, 김주환 - 밀리의 서재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쉽게 이해됐다. 몇 가지 사례 중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한다. 회복 탄력성의 참 의미랄까? 회복 탄력성을 얻기 위한 마음 자세랄까? 회복 탄력성을 복합적으로 설명해 주는 사례다. ‘패트리샤 휘웨이’의 이야기다. 영국에 사는 그녀는 전문직에 종사했다. 40세가 되던 2000년 그녀는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가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었다. 간질과 학습장애 그리고 식이장애까지 있었다.
문제는 먹는 거였다.
모든 음식이 아이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먹는 것마다 토하고 설사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 상태는, 간질로 이어졌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음식 문제에 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에게 맞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설사가 멎고 여러 부분에서 호전되는 모습이 보였다. 음식 조절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먹거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일 스스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녀는 음식 산업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국 최대 유통회사인 테스코의 경영진에 편지를 썼다. 알레르기 환자를 위한 음식을 만들자고 설득했다. 경영진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식품 개발을 그녀에게 맡겼다. 결과는 어땠을까? 영국의 식품 산업을 주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아이의 질병으로 모든 경력을 잃었던 그녀는, 더 화려한 경력을 쌓게 되었다. 역경을, 도약을 발판으로 그리고 역경 덕분에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 거다.
어떤가?
자기 앞에 주어진 최악의 상황을 대하는 그녀의 자세 말이다. 아이 때문에 자기 경력을 포기해야 했던 그녀였다. 아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하지만 그녀에겐 경력보다 아이가 소중했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은 물론이다. 모든 것을 잃은 것으로 보였던 그녀가 모든 것을 더 좋은 얻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의 절정이 아닐지 싶다. 역경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더 좋은 상태로 올라서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탄력성이 좋다는 말은, 본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더 높이 오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좋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