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유형은 다양하다.
가장 원초적인(?) 질문은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일 거다. 질문한 다음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물음표를 달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거나 원하는 것을 물었을 때, 답을 들으면 마음이 개운하다. 숙취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얼큰한 해장국을 먹으며 땀을 흘리듯, 개운해진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는데, 걱정을 날려버릴 만한 답을 들으면 어떤가? 체해서 꽉 막힌 속이, 한 방에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듯, 만병통치약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중요한 건, 그 말을 그대로 따를 때 효과가 난다는 사실이다.
물으면 어떻게든 답을 얻는다.
그 답으로 바로 해결되는 것도 있지만, 얻은 답을 실행해야 결과를 내는 것도 있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물었을 테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알려줬으니, 그대로 풀어야 한다. 수학 문제를 풀 듯이 말이다.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들었지만, 알려준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종종 있다. <초보 직장인을 위한 직장 생활 설명서>에도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를 실었는데, 대략 이런 느낌이다.
후배가 상담을 요청했다.
인생 여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 느껴졌다. 이야기를 듣고, 경험에 빗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제안도 했다. 이야기를 듣는 후배는 중간중간 답변을 했는데,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아! 그런 이래서 안 돼요.”, “아! 그건 저래서 안 돼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상담을 요청한 사람처럼, 다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나한테 왜 상담을 요청한 거니?”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데, 굳이 상담 요청한 이유를 알 수 없던 거다. 그때는 마음이 답답했다. 이럴 거면 왜 이야기하자고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봤다.
이렇게 정리가 됐다. 후배는 질문한 게 아니라, 확인을 받으려 했다. 자기가 이미 답을 정했다. 그 답을 확인받고 싶었다. 내가 그 답에 동의해 줄 것으로 여겼다. 나는, 생각과 다르게 다른 의견을 펼쳤다. 후배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내는 나를 설득함으로, 자기의 결정이 옳았다고 확신하고 싶었다. 아무런 결론의 내지 못하고 헤어지긴 했지만.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확인받고 싶어서 물을 때 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정말 묻고 싶은 것에 관한 답을 들은 거라면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실행하지 않을 거라면 묻지 않는 게 좋다.
괜스레 사이만 나빠진다. 후배의 상황처럼, 이럴 거면 왜 물어보느냐며 반문할지도 모른다. 정말 필요한 답을 얻고 싶으면, 답을 정해서는 곤란하다. 답을 정해 놓으면 아무리 뛰어난 현자가 말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마음에 담기지 않고, 마음에 담기지 않으니 행동하지 않는다. 확인을 받고 싶다면, 확인을 받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한 방향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생각에 생각이 더해진다. 집단 지성의 힘이랄까?
정해놓은 답이 없다면, 일단 따를 필요가 있다.
일단 따르면서 자기한테 맞게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좋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자기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르고 경험하면서 생각을 더 하고,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 수정하거나 변경할 때 물었던 사람에게 다시 의견을 물으면서 조금씩 나아간다면, 원하는 곳에 닿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에게 코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