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이라는 표현이 있다.
고집을 부리면 불통, 그러니까 소통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 생각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으면, 다른 생각은 일말의 여지가 없게 된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으로도 이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액체는 서로 섞이지만, 고체는 서로 섞이지 않는다. 단단하면 섞이지 않는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을 때, 그것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다른 것을 쥘 수 없다. 손을 펴지 않으면 다른 것을 취할 수 없다.
고집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비슷한 의미에서, ‘신념’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둘의 차이가 뭘까?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다른 누군가도 궁금했나 보다. 자동 완성으로 검색됐다. 신념과 고집의 차이는, 유연성에 있다고 말한다. 신념은 대화를 환영하고 새로운 사실이나 관점이 제시될 때, 재고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고집은 대화를 중단하고 자기 입장만 고수한다고 한다. 자기 생각에 관한 믿음이 확고하다는 건 같다. 차이는, 접근 방식에 있어서 유연성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린다. (참고: <한국시니어신문>, ‘정은상의 시니어 칼럼’, 2023.12.27. 등록)
설득력이 있다.
고집이라고 하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 신념이라고 하면 참 고귀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유도 알았다. 자기 생각에 관한 믿음이 있는 것은 좋지만, 언제든 대화를 나누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사람은 사람과 대화로 소통하면서 함께 살아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만 밀어붙여서는 함께 하기 곤란하다. 고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딱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어떤가? 그런 느낌인 거다.
진상 불변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진상은 꼭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마디 덧붙인다. 만약 진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 자기가 그 진상일 수 있다고 말이다. 자기도 예외일 수 없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된, 의미심장한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기업 교육을 하는 분의 글이다. 교육을 받아도, 조직이 변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변화의 대상이, 자기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강의를 듣고 난 다음, “우리 팀장님이 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라는 피드백이 그렇다. 자기는 아니고, 자기 팀장이 듣고 변해야 한다는 의미다.
불통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만 불통의 주체가 되는 건 아니다.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신념이라는 포장지로, 고집을 감싸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자기를 살펴보는 좋은 방법이 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아! 객관적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다. 사람이 객관적일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라며 운을 떼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어떤가? 자기 생각이다.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어폐가 있다.
메타 인지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자기를 넘어서 바라보는 것이니, 제삼자의 관점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동체도 그렇다. 그 안에 있으면, 생각이 그 안에 함몰된다. 조금 떨어져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바라보면 보면 어떤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거다. 자기 자신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 코칭에서는 메타 인지를 하도록 도움 주는 질문을 한다. 자기 스스로 할 수도 있다. 질문 몇 가지를 참고해서,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5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분이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것 같은가요?”
“(시간에 관한 문제라면) 저 시계가 지금 당신에게 뭐라고 할 것 같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