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말이 있다.
어떤 안건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져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반대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왜 이런 판단을 하는 걸까? 의견을 낸 사람 혹은 그 단체가 싫기 때문이다. 그냥 싫은 거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싫은 거다. 이렇게 되면, 옳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른 일을 방관하게 한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눈이 가려지고 귀가 닫힌다. 가려지고 닫힌 채로는, 제대로 된 말을 하기 어렵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표현이 있다.
보지 못하는 상태로 코끼리를 만지면 어떨까? 내가 지금 만지는 느낌으로 코끼리를 판단하게 된다. 다리를 만지면 기둥 같다고 판단하고 꼬리를 만지면 줄과 같다고 판단한다. 이 외에도 자기 손에 닿은 느낌으로, 판단한다.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거다. 잘못된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 우스운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우리 삶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나 자신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마음의 편견이 눈을 가리고 귀를 닫게 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말을 잘하는 법에 관한 영상을 봤다.
이 영상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게 구분하라는 거다. 무엇을 구분하라는 걸까? 사실과 의견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과 함께, ‘다 그렇게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구분하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과 의견을 교묘하게 섞어서 이야기한다. 의견에 사실을 섞진 않는다. 문제는 사실에 의견을 섞는다는 거다.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의견이 담긴다. “많다. 적다. 멀다. 가깝다” 등의 표현이 그렇다. 이 말들은 사실처럼 느껴지지만, 매우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 많은 것이 누군가한테는 적을 수 있다. 거리도 마찬가지다. 여럿이서 약속 장소를 잡을 때, 지역을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가깝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멀다고 한다. 자기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올바른 판단도 잘 구분해야 한다.
사실과 의견을 잘 구분해야 한다. 의견은 곧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벌어지는 상황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에게나 같다. 왜곡하지 않는 이상, 다르지 않다. 해석은 어떤가? 그 사람 마음이 어떤 색깔로 바로 보느냐 따라 달라진다. 벌어진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해석하는 내가 문제다. 여기서 표현하는 문제라는 건, 결과를 좌우하는 기준이라는 거다. 벌어진 상황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올바르게 판단하고 있는지 항상 살펴야 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