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이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잔잔한 호수가 떠오르는가? 고요한 마을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떠오르는가?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떠오르는가? 이 모습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옅은 미소가 번진다. 평화로운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항상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아쉽게도, 우리의 삶이 그렇지는 않다. 삶을 전쟁으로 표현하기도 하니 말이다.
평화(平和)를 한자로 풀면 이렇다.
평평할 ‘평’에 화목할 ‘화’다. 핵심은 ‘화’에 있다. 쌀‘미’ 자와 입‘구’ 자로 되어있다. 쌀이 들어가는 입이라는 의미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 중에 ‘식’을 말한다. 이것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평평하게, 그러니까 골고루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음식을 골고루 나눠 먹는 상태를 평화로 표현한 거다. 처음, 이 설명을 들었을 때 공감했다. 상상해 봤다. 모두가 골고루 나눠 먹는 상태를 말이다. 최소한, 다툼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평화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잔잔하고 고요한 상태를 평화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 상태가 온전히 평화로운 상태는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도 잔잔하고 고요하다. 다른 표현으로는 적막하다. 같은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이유가 뭘까? 또 다른 상황도 있다. 공동체의 모습이다. 공동체가 잔잔하고 고요하면 평화로운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뜻 떠올리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태라면 어떨까? 평화로운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 상태를 평화로운 상태라고 말하지 않는다. 앞서 한 표현처럼, 적막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평화의 정의를 달리해야 한다.
공동체에서 평화의 모습은 달리 정의되어야 한다. 그냥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 모습이 형성되는 과정을 봐야 한다. 대화 없이 고요하게 지내는 공동체를 평화롭다고 말할 순 없다.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공동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다. 생김새와 목소리는 물론 생각과 선호하는 것도 다르다.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아무런 마찰이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부딪칠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진정한 평화를 재정의해야 한다.
그저 고요하고 아무런 일이 없는 상태를 평화로운 상태라고 말해선 곤란하다.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고요하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평화로운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공동체는 다툼과 미움이 일어나고, 절망과 분노가 오가는 곳이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이 상태를 그대로 지속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평화로운 공동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얻는 결과가,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갈 때의 느낌이랄까?
길고 긴 터널을 지날 때 어떤 마음이 드는가? 지루하고 갑갑하다. 과연 끝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멈추면 어떻게 될까? 영영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냥 가야 한다. 묵묵히 가야 한다. 가는 노력과 시간이 더해지면, 터널의 끝이 보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희망을 품어야 한다. 평화는 마음에 희망을 걸고 계속 나아가는 과정에서 온다. 계속 나아갈 때, 얻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