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던지고 있는 부메랑은 어떤 마음인가?

by 청리성 김작가

옛날이야기 하나가 있다.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라는 것만 기억난다. 실제 있었던 일인지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미심장하다. 삶의 지혜는 배움을 떠나서 그리고 처지를 떠나서, 누구나 어디서든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어제 쓴 글의 소제가 된 드라마에도 보면 그렇다. 평생 배우지 못하고 해녀로 살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삶의 지혜가 묻어 나온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되는 게 아닌지 싶다. 아무튼. 이야기는 이렇다.


고깃집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사내는 고기를 썰고 있던 고깃집 주인에게 말했다. “야! 백정아! 고기 한 근만 줘라!” 고깃집 주인은 고기를 썰어서 그 사내에게 내줬다. 다른 사내가 들어와서 말했다. “김 서방! 고기 한 근만 줌세” 고깃집 주인은 고기를 썰어서 사내에게 내주었다. 앞선 사내가 이 모습을 보고 따져 물었다. “야! 백정아! 왜 같은 고기 한 근인데, 나한테 준 것보다 저 사람의 고기가 더 좋아 보이는 거냐? 양도 더 많아 보이는데?” 고깃집 주인은 칼을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아! 당신 고기는 백정이 썬 것이고, 저분 것은 김 서방이 썰어서 다른 것입니다.” 사내는 헛기침을 하더니, 도망치듯 고깃집을 빠져나갔다. 같은 사람이지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응대가 달라진다는 교훈을 준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진상을 부려야 잘 해준다는 착각이다. 식당을 가도 그렇다. 별거 아닌 것을 가지고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이 있다. 깐깐하게 굴어야 대접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깐깐한 고객을 더 신경 쓰는 건 사실이다. 안 좋은 상황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받아내는 것이 과연, 대접을 받는 걸까? 자기 앞에서 쩔쩔매면서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게, 대접받는 모습일까? 착각이다. 큰 착각이다. 딱, 이 꼴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대접받으려면 예우해야 한다.

존중해야 한다. 존중해서 받는 것이, 진짜 대접이다. 억지로 받아내는 것은, 대접이 아니라, 진상 대응이다. 진상 대응을 대접으로 착각하는 건, 좀 안쓰러운 일이다. 앞에서는 대접받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뒤돌아서면 욕이 되어 돌아오니 말이다. 앞에서나 뒤에서나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이, 진국이다. 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진국으로 대해주어야 한다. 나는 쭉정이를 내밀면서 알맹이를 받으려는 건 욕심이다. 교만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착각하면 살지 않도록 잘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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