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가 흘러오면서, 좋아진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모든 것에는 밝은 점이 있으면 어두운 점도 있는 법이니, 당연한 결과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어릴 때는 골목이나 놀이터에 나가면 함께 놀 친구나 형 그리고 동생들이 있었다. 누구와 놀지 무엇하며 놀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어떤가? 적막하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을 보기 어렵다고 한다. 학원을 보내는 이유가, 공부를 시키려는 의도도 있지만, 같이 놀 아이가 없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원에 가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의 어떤 곳은, 아이들이 놀지도 않으니, 놀이터를 없애자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주차할 공간이 없으니, 주차장으로 바꾸자는 거다. 실용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씁쓸한 마음도 든다.
모든 지역이 그런 건 아니다.
우리 동네만 봐도 그렇다. 초중고가 모여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동네 놀이터를 지나가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종종 본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놀던 기억도 난다. 더 신나게 놀아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때의 기억을 추억한다. 휴일이면 창문을 타고,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가끔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 소리가 정겹다. 목소리가 큰 아이의 말은 내용까지 들려, 때로는 웃음을 짓기도 한다. 요즘은 이 소리가 끊기지 않기를 바란다.
많이 달라진 게, 또 하나가 있다.
집에 방문하는 거다. 어릴 때는 그냥,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친구들 집에도, 그냥 갔다.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갈래?” 하면 간 거다. 자연스러웠다. 집에 엄마가 있으면 대수롭지 않게 맞아준다. 과일이나 간식거리가 있으면, 횡재한 기분으로 잘 얻어먹고 오기도 했다. 요즘은 어떤가? 친구끼리 집을 왕래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아이들이 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 분위기가 그런 것으로 보인다. 남의 집에 가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여긴다. 중학생인 막내는 가끔 ‘파마자 파티’라는 걸 한다. 친한 친구들이 한 집에 모여 놀고 자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데, 이 또한 예전만큼 활성화(?)되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그렇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남자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온다는 말도 없이 그냥 가는 거다. 그때도 말없이 왔다고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요즘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데려오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 말 없이 데리고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 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졌다는 말이다. 집에 초대한다는 건 내 집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것을 어렵게 생각한다. 가족끼리도 그렇다.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하기보다, 밖에서 만나서 식사하는 일이 더 많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집이 사는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를 대변한다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비교가 익숙한 요즘 시대에서는, 나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은 거다.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남자들은 별생각 없을 수 있지만, 여자들은 좀 예민해 보인다. 어질러진 집을 남에게 보이는 것도 싫어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말이다.
서로 초대하고 초대받는 가정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 자체가 참 좋은 느낌이다. 자기 삶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든다.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남이 가!”라고 말하는데, 집에 초대하는 사람이야말로 남이 아닌 우리가 되는 게 아닌지 싶다. 정말 가까운 사이로 여긴다면,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 한 번 나누는 게 어떨지 싶다. 말로만이 아닌 실제 우리가 된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