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DMZ 생명 평화 순례>에 참여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7대 종교가 함께하는, 2025 DMZ 생명 평화 순례’다. 전체 일정은, 지난 5월 19일부터 시작됐다. 6월 6일까지 총 18박 19일의 일정이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하여, 파주 임진각까지 385km를 걷는 여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 분들이 있고, 구간에 따라 참여할 수도 있다. 우리 본당은 민족화해분과 주관으로, 6월 3일 일정에 참여했다. 앱에 표기된 거리로 봤을 때, 약 22km를 걸었다. 걸음으로는, 28,500보 정도였다. 근래에, 가장 많이 걸은 날이었다.
새벽에, 성당에서 모여 차로 출발했다.
참고로, 참여한 모든 사람은 사전 투표를 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경기도 연천에 있는, ‘징파나루 연수원’이었다. 일정을 계속 소화하던 분들은 이곳에서 숙박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도착해서 아침으로 ‘콩탕’이라는 메뉴를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콩비지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걸쭉한 탕이 나왔는데, 그게 ‘콩탕’이었다. 밥을 말아서 김치와 함께 먹었는데, 아침 식사로 제격이었다.
아침을 먹고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분들이 전체 일정으로 소화하는 분들로 보였다. 신부님과 목사님이 계셨고 일본과 베트남에서 온 스님도 계셨다. 출발하기 전, 일본 스님 주도로 준비체조를 했다. 처음 하는 동작들이 더러 있었다. 할 때는 힘들었는데, 마치고 나니 몸이 풀린 기분이 들었다. 기억나는 몇몇 동작은 나중에도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머릿속에 저장했다. 출발 전, 하루 일정에 참여하는 단체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본당 외에도 서너 곳 정도의 단체가 참여한 것으로 보였다. 소개를 마치고, 큰절을 시작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함께 하는 서로에 대한 감사의 의미라고 했다.
한 줄로 이동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기보다 침묵하면서, 순례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의미였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하늘과 딛고 선 땅 그리고 이동하는 곳곳을 잘 새기며,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자고 하셨다. 도로 끝으로 이동했다. 차량 이동은 거의 없어서,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한쪽에는 낯선 꽃들이 형형색색 피어있었다. 궁금한 꽃은 사진을 찍어서 검색하기도 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꽃이었다. 드문드문 집도 보였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았다. 입구에 풀이 사람 높이까지 자란 곳도 있었고, 녹슨 철문과 허물어져 가는 집도 보였다. 살았던 사람이, 집을 두고 어디론가 떠난 모양이었다.
고요했다.
길이나 동네도 고요했고, 걷는 사람들도 고요했다. 중간에 몇 번 쉬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둘 셋이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늘었다. 필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대화한 사람도 있었고, 그냥 대화를 나눈 사람도 있었다. 침묵하면서 가는 길이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침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도 무난해서, 걷는 내내 지루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두 번 정도 쉬고 걸은 다음, 점심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본래는 호랑이 배꼽 마을이라는 곳이었는데, 공사 중이라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였다.
이 수도회는 최근에 유명(?)해졌다. 최근에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님이 이 수도회 출신이기 때문이다. 수도회 원장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누구도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서 교황이 선출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이유는, 종교 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가 이 수도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식사 장소가 바뀌면서 수도회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으니, 이 또한 길이라 여겼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했고, 두어 번을 쉬고서 하루의 최종 목적지인 ‘백학 공소’에 도착했다.
잔디마당에 모두 둥글게 모였다.
처음 시작했던 그 대형으로 서로 마주 보며 둥글게 섰다. 각 단체의 대표가 하루의 소감을 이야기하고, 서로 동행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도 다시 큰절을 나눴다. 공식적인 일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우리 본당은 UN군 화장장과 북한군 묘지를 방문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화장장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북한군 묘지를 보면서, 왜 평화가 절실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죄가 있어서 전쟁터에 끌려 나온 것도 아니고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군 적군을 떠나, 젊은 삶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밖에 없던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루 일정을 돌아보는데,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체 일정을 소화하는 분들이다. 하루만 걸었어도 발바닥에 통증이 오고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데, 19일의 일정을 소화한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미 16일 정도 일정을 소화하신 분들의 표정치고는 너무 밝았다. 전체 일정을 소화한다고 어떤 이득이나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생명과 평화 이 두 가지만 생각하고 걷는 분들이다. 놀라운 건 외국 스님들도 있었다는 거다. 이분들의 생각이 궁금했지만, 묻지는 못했다.
이 세상 안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분들로 보였다.
의지로 어찌하지 못하는 선택은 받아들이지만,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선택은 스스로 하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건 의지가 아니지만,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의지다. 자기 의지로 이렇게 걷고 있는 거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가 주도적으로 선택했고 그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 못할 이유는 많지만, 하는 이유는 하나다. 자기 삶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살아내는 삶을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