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직원이 있다고 하자.
한 명은, 자기가 받는 만큼만 일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판단했을 때,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면 불평을 늘어놓는다. 때로는 그 일을 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더 많은 일을 시키려면 더 많은 급여를 달라고 요구한다. 다른 한 명은, 다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급여 대비 적절한지를 먼저 따지지 않는다. 주어진 일이라면 일단 열심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자기가 받는 것 이상으로 일하면, 언젠가는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것이라 믿는다. 전자의 사람은 더 주면 더 일하겠다는 논리고, 후자의 사람은 먼저 일하고 나중에 받겠다는 논리다.
누구의 생각이 옳을까?
단정 지어 말하기는 곤란하다. 전자의 경우, 처음에는 열심히 일했는지도 모른다. 후자의 사람처럼, 열심히 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계기로 그 믿음이 깨졌다면, 그 사람의 태도를 마냥 비난할 순 없다. 그렇지 않은가? 열정페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 것은 잘못된 처사다. 이런 것을 다 차치하고 보면, 후자가 더 바른 태도로 보인다.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요구하기 전에 먼저 자기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좋게 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같다.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거다. 원하는 것은 같지만, 요구하는 방식은 다르다. 두 사람의 직원을 고용한 고용주라면, 누구를 더 챙겨주고 싶은가? 전자인가? 후자인가? 아마도,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으로 여겨진다.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보상을 먼저 바라는 모습을 좋아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두 가지가 동시에 모두 충족되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어떤 공동체든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인다. 다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얼추 알 수 있다. 지금 하는 행동이, 무엇을 바라고 하는지 보인다는 거다. 평소와 다르거나, 조금 더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분명히 바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일 때도 있고, 얄미워 보일 때도 있다. 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하는 행동 때문이기도 하고, 그 사람에 대한 평소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평소에도 열심히 잘하는 사람은, 그런 행동이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이 그러면 어떨까? 얄미울 수밖에 없다. 자기가 원할 때만 하는 행동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좋은 행동이라도, 의도가 불순(?)하기 때문이다. 좋아 보이진 않는다.
알아서 알아주면 좋은데, 그러지 않을 때도 많다.
자기 PR 시대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직접 말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렇게 알리는 게 과연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일시적으로는 그럴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진정성 있는 모습은 분명 누군가에게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분명히 드러난다. 드러났으면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는 알아본다. 그러니 자기를 어떻게 알릴지 고민하기보다,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살피고 충실히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가장 효과적인 투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