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오해를 받지 않는다.

by 청리성 김작가

살면서 뿌듯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로 인해 드러날 때다. 드러내려고 하지 않은 것은, 크게 두 가지 종류다. 누명을 썼을 때와 크게 도움을 주었을 때다. 상황은 상반되지만, 보이는 반응은 비슷하다. ‘오! 그랬어?’라는 표정과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말해도, 문제가 될 것 없었다. 도움을 준 것은 그렇다고 해도, 누명을 썼을 때는 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해한 사람들이 민망해하고 미안해하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으로 넘어가면 그럴 수 있었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상황이라 그러기가 뭣했다. 나 살자고 누군가를 죽이는(?) 게 좋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내가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과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다.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어찌해서 알게 되는 게 더 좋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드러나지 않고 그냥 묻히는 일도 있다. 억울했지만 그냥그냥 넘길 만했다.


회식 장소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오래간만에 많은 사람이 회식할 일이 생겼다. 인원이 많아 예약해야 했기에, 어디로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몇몇 분들이 자기들이 가본 곳이 있는데, 그곳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매번 가던 곳이 아니었으면 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그곳을 예약하고 사람들과 갔다. 처음부터 뭔가 불안함이 엄습했다. 삼겹살을 시켰는데, 고기에 기름이 거의 없었다. 기름에 자글자글 익는 모습이 연출돼야 하는데, 소고기처럼 불판에 달라붙는 상황이 생겼다. 기름기 없는 삼겹살. 어떤가? 생각만 해도 목이 턱턱 막힌다.


사람들한테,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들었다. 처음이라 이럴 줄 몰랐다고만 했다. 추천했던 사람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여기 괜찮다고 추천해서 온 거잖아요? 왜 아무 말을 안 해요?”라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 마음도 잠시.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 하는 마음에 가만히 있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며칠 지나서, 또 그 얘기가 나왔다. 이제는 그들이 말을 꺼낼 줄 알았다. “사실은 저희가 가보고 괜찮아서 가자고 한 거예요.”라고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뭐 어떻게 하겠는가? 당일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고도 아무 말 하지 않으니, 억울한 마음이 격하게 올라왔다. 그때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오해받는 일은, 크고 작게 자주 일어난다.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다. 보이는 상황으로 판단할 때는 그렇게 된다. 타인을 볼 때도 그렇지 않은가? 보이거나 들은 대로만 판단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같은 것 같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용은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면, 섣부른 판단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말이, 그냥은 아니라는 거다.


오해를 받는 일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오해할 일은 어떨까? 내가 어찌할 수 있다. 오해는 섣부른 판단에서 오는 거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단정해서 생기는 잘못된 판단이다. 잘못된 판단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은 해야 한다. 억울한 상황을 경험해 보면 알지 않는가?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를 말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자기도 언젠가는 그 대상이 되도록 방조하는 것과 같다. 나의 섣부른 판단과 방관이, 내가 짊어져야 할 몫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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