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공룡 둘리>의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둘리와 그의 멤버들이 우주로 여행을 떠난다. 보물섬을 찾아 나선 거다. 여기에는 뜻하지 않게, 희동이라는 아이도 합류한다. 그들이 타고 간 건, 커다란 대야였다. 대야를 타고 우주를 떠다녔다. 지도를 보면서 살피기도 하는데, 쉽게 찾지는 못했다. 우주에서 한참을 떠다니다가, 반짝이는 위성을 발견한다. 애타게 찾았던 보물섬이었다. 그곳에 오르자, 온갖 보물이 쌓여있었다. 그들은 환호하며 보물을 담기 시작한다.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보물을 담고, 돌아가기 위해 대야에 탄다.
이동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너무 많은 보물을 담아서 대야가 기울어진 거다. 담아왔던 보물을 버리지 않으면 그대로 추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모두는 울상을 지으면 보물을 하나씩 버리다가, 결국 다 버리고 돌아오게 된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정신을 차린 모두는, 잠을 잤다고 생각했고 같은 꿈을 꿨다고 여겼다. 꿈이지만 아쉬운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어디론가 가는데, 희동이는 가지고 놀던 돌멩이 같은 것을 화분 안에 던져놓고 따라간다. 화분 안을 클로즈업한 화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돌멩이가 아닌 다이아몬드였다.
모두 꿈꾼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모두가 그토록 갖고자 했던 보물이었다. 희동이만 제외하고 말이다. 희동이는 그저 공기놀이하는 돌멩이 정도로 여겼다. 화분에 던져놓고 따라간 것을 보면 그렇다.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인식하는 사람이 화분에 던져놓을 리가 있겠는가? 같은 다이아몬드인데 왜 이런 행동을 한 걸까? 희동이한테는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돌멩이의 가치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지고 놀다가 필요 없으면 어딘가에 던져놔도 될, 그 정도의 가치로 여긴 거다. 이 장면을 보고,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안 사람이면, 탐나지 않았을까? 그 화분이 우리 화분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겠냐는 말이다.
가치는 매우 주관적이다.
나에게는 큰 가치가 있지만, 누군가한테는 아무런 가치를 못 느끼게 한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뿐만이 아니다. 어릴 때, 이런 기억 하나쯤은 있지 않나 싶다. 좋아하는 친구가 준, 연필 한 자루 혹은 다른 물건이 있다. 이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흔한 연필이고 물건일 뿐이다. 알지 못하는 친구가, 그 연필을 빌려달라고 하면 머뭇거린다. 다른 것을 찾아서 빌려주거나 빌려주지 않는다. 친구는 연필 한 자루도 안 빌려주는 매정한 친구로 여기고 돌아선다. 친구한테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이 연필만은 빌려줄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삶 안에도 가치를 따질 때가 많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도 그렇다. 누군가는 A를 택하고 누군가는 B를 택한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혹은 그른지는 쉽게 판단할 순 없다. 가치에 따라 다르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 중심이 어디 있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때로는 당장 필요한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가치도 중요하지만, 지금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중요한 가치는 단순하게 A냐 B냐가 아닌,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치는 곧 마음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가장 마음이 가고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다. 가치는 삶 전체를 반영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그 방향이 원하는 것이라면 가장 이상적이라 말할 수 있다.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잠시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다르다면, 방향을 바꿀 것인지 아니면 가치를 바꿀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거다. 마음의 방향과 나아가는 방향이 다른 것만큼 후회되는 삶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