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은 겸손에서 온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경청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없다. “잘 몰라서 하는 소린데….”라며 운을 떼고, 일장 연설을 한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잘못된 건 아닌데, 기회를 잃게 된다. 새로운 정보 혹은 지식을 들을 기회를 잃게 된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전문가라고 해도 모르는 부분이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바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자기는 모르지 않는 것으로 보이려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겸손한 사람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미팅할 때도 그렇다.
상대방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목적으로 하는 미팅이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상대방이 말이 많이 하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들으면 된다. 이 간단한 것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함께 미팅했던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자기가 더 말을 많이 했다. 자기 관심사가 나오니 신나서 이야기한 거다. 상대방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지했지만, 반복되는 상황에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허무하게 헤어졌다.
말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게 더 어렵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깨달은 부분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 쉽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건 매우 어렵다. 정말 큰 인내가 필요하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는 말이 그냥이 아니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어야 한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게 어려운데, 시간이 지나면서는 좀 나아진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할 때와 그것을 참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알게 된다. 어떤 결과가 더 좋은지 알게 된다. 참는 게 조금은 괜찮아지는 이유다.
경청은 많은 것을 얻게 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게 한다. 간접 경험을 통해, 실제 경험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되기도 하고, 미뤘던 것을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하기도 한다. 잘못 알고 있던 것을 깨닫고 바로 잡기도 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이미지도 좋게 된다. 잘 들어주는 사람과 대화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호감이 생긴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 문화가 팽배한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귀인을 만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경청은 그 사람을 마음에 담는 거다.
그 사람의 이야기와 그 사람의 인생을 담는 거다. 그래서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지도 모른다. 나를 담아주는 사람인데 그렇지 않겠는가? 듣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놔야 한다.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으면 듣는 게 어렵다. 나를 내려놓는 태도가 겸손이다. 겸손은 나를 내려놓고 타인을 담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 자세다. 단순한 마음이다. 생각이 많고 복잡하면 겸손하기 어렵다. 내 속에 나를 비우기가 어렵다.
단순함의 지혜가 필요하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타인을 담을 줄 아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아닐까? 지혜와 겸손은 서로 다른 결로 보이지만, 어쩌면 서로 같은 결인지도 모른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정말 겸손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다른 듯하지만,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