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실제가 아니다.
상상이다. 없는 것을 생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두려움이다. ‘이러할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며 단정 짓고, 그렇게 생각을 몰아간다. 실제 일어날 것처럼, 스스로 여기게 한다. 좋지 않은 측면에서 자기 최면이다.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다는 말처럼, 스스로 두려움을 만들고 들어간다. 두려움은 생각할수록 더 깊이 들어간다. 늪에 빠졌을 때 몸부림치면 더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면, 더 깊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다면, 실체가 아닌 이 두려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영역이 아닌 것에 신경 쓰기 때문이다.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기울인다는 거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어찌할 수 없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것이 원하는 대로 되는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저 바라고 기다릴 뿐이다. 간절히 기다린다고, 비가 오는 것도 안 오는 것도 아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비가 오든 안 오든, 그저 받아들이면 걱정이 생기지 않는다. 받아들이지 않으니, 걱정이 생기는 거다. 걱정이 깊어지고 그것이 나에게 닥칠 힘듦으로 다가오면, 두려움이 되는 거다.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마음 쓰지 않기.
두려움에서 벗어날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있는가? 간절히 바라면서 기다리던 순간 말이다. 발만 동동 구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그때.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온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던 그때. 왜 이런 마음으로 불안에 떨었을까? 원하는 방향이 명확했지만,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때문이다. 어쩌면 안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과.
원하는 방향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땠는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버둥 쳤는가? 아니면 그대로 받아들였는가? 전자의 사람은 분이 풀리지 않았을 거다.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자기 성질만 부릴 수밖에 없다. 남는 게 무엇이었는가? 아쉬움과 원망과 기타 등등의 부정적인 기운 아니었는가? 후자는 어땠을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거다. 올라왔던 심장 박동은 가라앉고 삐쭉 섰던 머리는 가라앉는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기에, 결과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거다.
의도를 품지 말라는 말이 있다.
원하는 의도를 강하게 품으면 도달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인정하기 어렵다.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결과가 나왔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한 마음이 계속 갈 수도 있다. 간절히 원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는 거다. 원하는 것은 명확하게 하되,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아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거다. “다 이유가 있겠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찾는데, 마음 써야 한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에 마음을 쓰지 말고, 그 이유를 찾는데, 마음 써야 한다.
마음을 그 방향으로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 좋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찾게 된다. 오히려 원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더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좁은 시야를 가지고 집중한 결과, 위험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라야, 시야가 넓어지고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의도는 품되, 너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다 나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믿고, 온전히 맡길 때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