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제목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전국을 강타했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회자했던 책이다. 베스트 셀러 1위까지 오른 뒤, 한동안 유지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완독률이 가장 낮은 책이라는 말도 있었다. 다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제목에서 아우라가 느껴진다.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살아가는 데 알아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에 집어 들게 된다. 사람들도 많이 찾는 책이라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구매한다. 책장을 펼치고 읽어보면 어떤가? 처음에는 흥미롭다. 예시가 나오면서 “당신의 선택은?”이라고 묻는다. 시간이 갈수록 점차 속도가 떨어지면서,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치지 않게 된다.
나도 완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잘 읽어 나가다가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막혔다. 일정이 안 돼서였는지 아니면, 호흡을 맞추기가 버거웠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오래전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제대로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쉽지 않은 책이다. ‘정의’라는 단어 자체가 쉽지 않다. 무엇이 정의인가? 쉽게 말하기 어렵다. 법에 따르는 것이 정의인가? 아니면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으니, 사정을 보고 적절하게 판단하는 것이 정의인가? 사건 사고를 보면, 정의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타까운 사정에 선처를 해줬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저지른 행위는 같지만, 마음이 달라지는 거다. 문제는, 이런 것도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기준이 없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두 사람이 도둑질했다고 하자. 한 사람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훔쳤으니, 악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처벌한다. 한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처벌하지 않는다. 어떤가? 합리적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개인의 욕심과 먹고살기 위함을 구분할 것인가? 보이는 대로 판단해도 좋겠지만, 보이는 것이 다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나 개인적인 사정은 다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만 알고 그 사람과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만 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자신을 모를지도 모른다. 개인의 욕심인지 생존을 위한 것인지를 말이다. 사실, 법에 관한 부분은 이러쿵저러쿵 논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부분에 관한 사항이다.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처벌에 관점을 두면,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에 집중하게 된다. 자비의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지 집중하게 된다. 관점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하고자 하면 방법이 생기고 피하고자 하면 핑계가 생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마음이 따라간다. 시선도 함께 따라간다.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하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하는가?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들에게 나쁜 말을 많이 하는가? 사람들의 나쁜 점을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마음을 보내고 싶은가? 그리고 행동하고 싶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