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가능성으로 꽃피운다.

by 청리성 김작가

희망은 가능성에서 시작된다.

희망을 품었던 상황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희망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상황에서 품는 희망도 있다. 소소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회사에서도 다양한 상황이 있다. 진급 시즌이 그렇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 승진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희망을 품는다. 되고 안 되고의 상황에서 희비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연봉 협상 기간도 그렇다. 자기 스스로 성과가 좋다고 판단되거나 평가를 잘 받으면 희망을 품는다. 희망을 품는 이유는,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야구 경기에도 희망을 품는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길 바라는 것이 그렇다. 회사가 교대역 부근에 있어서, 퇴근할 때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으로 이동한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이동하는 구간에 종합운동장을 거치게 되는데, 경기가 있는 날에는 야구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많이 다닌다. 유니폼만 봐도 어떤 팀이 경기하는지 알게 된다. 잠실에 내려서 이동할 때도,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다. 올해 유난히 유니폼 입은 사람이 눈에 많이 띈다.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등에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희망은 바라는 거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거다.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우리 팀이 비기거나 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도 없다. 이런 사람은 있다. 경기하는 팀이 아닌, 팀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과 치열하게 순위 경쟁하는 팀이 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품는다. 자기 팀의 승패를 떠나, 순위를 유지하거나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 시즌이 후반기에 접어들었는데, 순위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끝까지 순위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 싶다. 야구가, 작년보다 더 흥행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생각된다.


야구 경기를 볼 때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고 있지만, 질 것 같지 않은 느낌. 처음부터 볼 때도 있고 중간에 볼 때도 있는데, 점수로는 끌러가지만, 지지 않을 것 같다. 경기 내용으로 그렇게 판단할 때도 있고, 선수들의 동작이나 표정에서 느껴질 때도 있다. 선수들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아니, 역전해서 이길 것 같은 느낌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날은 실제로, 역전에 성공해서 이기거나 연장 끝에 무승부로 끝난다. 지더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충분히 훌륭한 경기를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승패에 기분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플레이에 기분이 좌우되는 듯하다.


이길 것 같은 경기에서는 가능성이 보인다.

될 듯 말 듯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언젠가는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회에 공격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면 다음 회에는 꼭 기회를 만들고 살릴 수 있을 듯 보인다. 몇 번째에 그렇게 되느냐는 알 수 없지만, 결국 해낸다. 그때의 짜릿함을 정말이지 강렬하다. 야구가 뭐라고, 그렇다. 한 장면 한 장면에 손뼉을 치기도 하고, 한숨 쉬며 고개를 뒤로 젖히기도 한다. 희망대로 됐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상황 때문이다. 희망을 거는 것이 있는가?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발견하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희망을 품고 싶은 것이 있는가? 가능성을 찾아보자. 가능성을 찾으면 희망을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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