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아물지만, 흔적은 남는다.”
언젠가 들었던 말인데,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면 떠오른다. 누구나 몸에 상처의 흔적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잘 보이는 곳이라면, 볼 때마다 다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에게도 있다. 지금은 거의 티가 나지 않지만, 왼쪽 약지를 보면 그렇다. 군대에서 훈련받다가 다쳤는데, 이병 때라 통증이 있어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냥 삐었거니 하고 넘겼다. 한참이 지나고 통증은 사라졌는데, 마디가 부었다. 들어갔던 반지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골절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하게 삔 게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때 바로 보고하지 못한 후회였다. 골절이라는 걸 알았다면, 회복하는 기간은 편하게 지냈을 텐데 말이다. 부은 손가락을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부은 마디가 본래 상태로 돌아왔다. 모양은 돌아왔지만, 마디를 누르면 통증이 올라오긴 한다. 아마 평생 기억하게 될 듯하다.
상처는 순간이지만, 흔적은 영원하다.
상처는 아픔이 있지만, 흔적은 기억이 있다. 상처를 치료한다고 해도,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상처는 눈에 보이는 것도 좋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더 좋지 않다.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는 것이 그렇다. 보이진 않지만, 마음에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강한 충격은 더욱 그렇다. 전문용어로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이 남게 되는 거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바로는, ‘트라우마’는 죽음을 느끼는 상태라고 했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든 상황을 마주하면, 트라우마가 남는다는 거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처가 크면 흔적도 깊다.
흔적이 깊은 것이 안타까운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자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나 문장을 몸에 새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잊지 않기 위해서 혹은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 방법에 관한 판단은 유보하는 것이 맞겠다. 아무튼. 상처의 흔적은 아픔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필요한 자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경각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명확하겠다.
부주의로 다친 사람은 더욱 그렇다. 상처의 흔적을 보면서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게 된다. 불에 덴 사람은, 불을 다룰 때 주의하게 된다. 불에 덴 상황을 다시 마주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처를 한다. 차량에 스크래치 흔적도 그렇다. 스크래치 흔적을 보면서,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주차할 때 옆 기둥을 보지 못해서 긁었다면, 주변을 잘 살피게 된다. 상처나 흔적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기억해야 할 흔적은 무엇인가?
상처가 되었든 아니면 기억을 위해 기록했든, 내가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할 흔적은 무엇이 있는가? 이 흔적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어떤가? 내가 기억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들 끝에, 향해야 하는 최종 질문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