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에서 가장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조율하고 합의하는 거다. 사람은 자기 처지에 따라, 생각이 천차만별이다. 같은 상황을 보고 해석하는 것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이해가 되는 내용도 있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드는 내용도 있다. 아이디어라면 아이디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말 독특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모든 사람의 생각을 조율할 필요는 없다. 가능하지도 않다. 어려운 일이지만, 어느 정도 합의를 보기 위한 논의는 해야 한다. 중간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이해시킬 것은 이해시켜야 하는 거다. 중간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중간자라고 표현한다.
중간자 역할은 어렵고 중요하다.
손해와 이익이 걸린 문제라면 더 그렇다. 손해와 이익은 반비례 관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이익을 보는 상황은 거의 없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상황도 거의 없다.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자기가 이익을 얻으면, 타인은 손해를 입어야 한다. 타인이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자기기 손해를 봐야 한다.
요즘같이 더운 날을 예로 들면 이렇다.
두 사람이 있는데, 선풍기가 한 대밖에 없다. ‘A’가 시원해지려면, ‘B’는 더위를 감당해야 한다. ‘B’가 시원해지려면, ‘A’가 더위를 감당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그렇다. 회전시키는 거다.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더위와 시원함을 함께 공유하는 게 최고의 선택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사자들은 이 당연한 것을 보지 못한다. 자기 시원함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서로가 시원함과 더위를 동시에 보도록 해주어야 한다. 원활한 조율과 합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중간자 역할을 할 때, 동시에 요구받는 것이 있다.
자기들의 요구다. 자기들의 요구는 이러하니,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 자신도 받아들이겠다는 논리다. 서로가 이 조건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조율과 합의가 어렵게 된다. 두 개의 블록이 합쳐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홈이 파인 블록과 돌출된 블록이 만나야 가능하다. 둘 다 홈이 파였거나 돌출됐다면 어떨까? 합쳐지는 건 불가능하다. 서로 요구하는 모습이 그렇다. 합의를 이루기에 불가능하다.
서로 요구만 하는 이유는, 믿지 못해서다.
자기가 먼저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면, 타인도 자기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다. 몸의 항상성 원리와 비슷하다. 규칙적으로 식사하면 몸은 열량을 잘 소비한다. 때가 되면 영양소가 들어온다는 것을 몸이 믿기 때문이다. 불규칙한 식사는 어떨까? 열량 소비를 잘 하지 않는다.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신 때문이다.
합의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믿음이다.
나의 요구를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조율도 합의도 어렵다. 그 믿음을 내가 먼저 보여주면 어떨까? 때론 손해만 입을지 몰라도, 그 손해가 어딘가에 이익으로 쌓일지도 모른다. 잊고 지낸 적금처럼, 필요할 때 한 번에 받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