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감사로 나아가는 마음을 청하며

by 청리성 김작가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의 차이는 뭘까?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 같을 순 없지만, 대략 이런 이미지가 아닐지 싶다. 겸손한 사람은 선한 인상이 떠오른다. 차분한 듯하기도 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함께 있을수록 편안하다. 교만한 사람은 어떤가? 인상부터가 남다르다.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다. 말할 때, 옷을 풀어 헤치는 것처럼, 팔과 다리를 풀어헤치는 동작을 취한다. 상대방이 말하는데, 계속 끼어들어서 끊는다. 함께 있는 시간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싶어진다.


상황을 마주하는 차이도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해석한다. 겸손한 사람은, 감사한 마음을 먼저 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먼저 낸다. 좋은 상황이든 그렇지 않은 상황이든, 먼저 감사함을 낸다.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서, 수용하는 거다.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좋은 방향으로 해석한다. 교만한 사람은 불만을 먼저 드러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다. 좋지 않은 상황은 물론, 좋은 상황이라도 더 좋은 상황이 아닌 것에 불만을 드러낸다. 마치 불평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상황도 불평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겸손한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겸손해진다. 겸손과 감사는, 젓가락처럼 하나로 여겨야 한다.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데,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겸손한 태도가 가식이라면 가능하다.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인데,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좋은 일만 감사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 반쪽짜리 겸손과 감사라면 그럴 수 있지만, 온전히 겸손하고 온전히 감사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하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겸손과 감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타인에게는 배려라는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자신에게는 선물이라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왜 그럴까? 예를 들면 이렇다. 두 아이가 있다고 하자. 두 아이에게 통에서 사탕을 꺼내 한 개씩 줬다. 한 아이는 작은 사탕 하나에 큰 감사를 전하며 받았다. 한 아이는 사탕도 많으면서 하나만 줬다고 투덜대면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머지 사탕을 어떤 아이에게 주고 싶은가? 하나도 감사하며 받은 아이인가? 투덜대며 받은 아이인가? 전자의 아이다. 내 아이라도 후자의 아이한테는 주고 싶지 않을 거다. 인지상정이라는 거다.


오늘 하루 어떤 선물을 받았나?

받은 선물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나의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겸손의 태도로 대하고, 감사의 마음을 내었는지 살펴야 한다. 그랬다면 선물을 받지 않았다고 느끼진 않을 거다. 지금 있는 그 자체를 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그 자체의 선물 이외에 선물을 바란다면, 아직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필요한 때가 아니라는 거다. 목마를 때 시원한 한 잔의 물처럼, 나에게 올 때가 분명 있을 거다. 곧.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