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여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계획할 때 혹은 무슨 말을 할 때 망설여진다. 망설여지는 이유는, 걱정 때문이다. 무언가를 계획한다는 건, 새로운 시도를 의미한다. 새롭게 무언가를 할 때는, 하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지만, 걱정도 따라온다. 빛 뒤에는 항상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걱정이 무엇인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일어나길 바라진 않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느껴지면 걱정도 비례해서 크게 느껴진다. 무슨 말을 할 때도 그렇다. 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에 따라, 벌어질 상황을 예상하게 된다. 좋지 않은 반응이 예상되면,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걱정이 크면, 망설임은 주저앉음이 된다.
시도하기 전에 포기하는 거다. 머릿속으로 완벽하게 계획이 되고 우려될 만한 사항이 없을 때 시도하려는 사람이 있다. 잘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겠다는 거다. 완벽주의라고 말하지만, ‘걱정 주의’라는 표현이 더 맞다. 완벽이라는 방패막이를 내세우지만, 그 뒤를 보면 걱정이 도사리고 있다. 준비가 완벽하게 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예 시작할 의지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시도하는 사람은, 완벽하게 준비됐다고 시작하지 않는다. 완벽한 준비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무엇을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도 확답하기 어렵다.
걱정은 두려움을 불러온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면, 떨어진 지점부터 파동이 일어난다. 멀리 던진 돌로 인해 서 있는 곳까지 파동이 밀려온다. 걱정과 두려움도 그렇다. 걱정 하나가 마음에 떨어지면, 그곳부터 두려움의 파동이 마음에 출렁인다. 작은 걱정이 큰 두려움으로 변하는 거다. 작은 파동이 크게 퍼지는 모양과 같다. 걱정이 또 다른 걱정을 불러오고 더 해진다. 주먹만 한 눈덩이가 굴러서, 사람 몸처럼 큰 눈덩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걱정은 실재하지 않는다.
걱정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두려움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아직 벌어지지 않았고, 벌어질 가능성을 따지기도 어렵다. 이는, 예상되는 문제 상황에 대비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상되는 문제 상황은 경험을 통해, 예측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다. 걱정과 두려움은 다르다. 대비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다. 벌어진 상황을 예측하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에 입을 타격을 떠올릴 뿐이다.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거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어찌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어찌하려고 하니, 걱정이 되고 두려움으로 퍼지는 거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하면 된다.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을 해석하는 방향을 설정하는 거다. 밝은 방향으로 설정할 수도 있고 어두운 방향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전자는 기대하게 하고, 후자는 걱정하게 한다. 다행인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방향으로 결정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