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든,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by 청리성 김작가

<비폭력 대화>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미뤘던 책인데, 이제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연민이 인간의 본성이라 믿었기 때문에, 두 가지 의문을 품어왔다고 말한다. 첫째는, 무엇 때문에 연민으로부터 멀어져 서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을까? 둘째는, 이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 연민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의문을 품고 연구한 결과, 언어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연민이 우러나는 대화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이 바로,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이다.


NVC 모델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관찰(observations), 느낌(feelings), 욕구(needs), 부탁(requests)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행동을 ‘관찰’한다. 그 관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다. 그러한 느낌을 일으키는 ‘욕구’, 가치관, 원하는 것을 찾아낸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한다.” 대화할 때, 네 가지 요소로 솔직하게 말하고 공감하며 들으라고 강조한다. 피드백을 주는 방법과 비슷하다. 피드백을 줄 때는, 피드백 주려는 사람의 모습을 사실에 근거해서 말한다. 그 모습에 관한 느낌을 전달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원하는 것을 요청한다. 둘 다, 대화의 결이 같다.


연민을 방해하는 세 가지도 소개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행동을 비판하는, ‘도덕주의적 판단’이 있다.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판단에 가둔다는 거다. 다음은, ‘비교하기’다. 한 저자의 말을 빌려, 삶을 정말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고 말한다. 끝으로, ‘책임 부정하기’가 있다.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느낌 그리고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의식을 흐리게 한다고 한다. “해야만 해”와 같은 표현이 개인의 책임을 모호하게 한다는 거다. 이 중에서 ‘책임 부정하기’에 주목하게 된다. 책임을 부정하는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저자의 글이 그렇게 만든다.


『만약 인류의 파괴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해서 언젠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그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잔인성이 아니다. 그 잔혹함이 일으킨 분노, 그리고 그 분노가 가져올 보복 때문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일반 대중의 온순함과 책임감의 결여, 그리고 모든 부당한 명령에 대한 비굴한 순종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온 끔찍한 일들, 또 앞으로 일어날 더욱 전율할 만한 사건의 원인은, 이 세상 여러 곳에서 반항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순하고 순종적인 사람의 수가 계속 늘어난다는 데 있다.』 출처: <비폭력 대화>, 마셜 B. 로젠버그


”어쩔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누가 강압적으로 지시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많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잘잘못을 떠나, 정당화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저자의 말을 통해 깨닫게 된다.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학살에 동원된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다.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도,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은 있다. 부당함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갇히기도 한다. 정말,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책임을 부정할 순 없다. 책임을 부정하는 순간, 비겁한 사람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비겁한 사람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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